[조선사]정조의 정치, 사회 사상- 정조는 과연 유교적 계몽절대군주인가
- 최초 등록일
- 2006.06.2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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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조의 정치 사회 사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내용, 각주 완벽합니다. 인터넷에서 베낀 내용 0%, 100% 논문과 책을 참고로 썼습니다.
10점만점에 9점 받은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정조의 정치운영방식과 군주관
1. 탕평책의 실시
2. 성군론과 세도정치론
Ⅲ. 개혁정치의 실시와 백성관의 변화
1. 신해통공과 경제개혁정책
2. 서얼허통정책과 노비혁파론
Ⅳ. 맺음말
본문내용
지금까지 정조를 과연 ‘계몽절대군주’에 비교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정조의 정치, 사회 사상을 다른 군주들과의 비교를 통해 검토해보았다. 정조는 그야말로 ‘변혁기’의 군주였고, 이러한 점은 세종과 비교해 큰 시대적 배경의 차이점이었다. 그래서 정조의 개혁은 다분히 신권의 강화에 대한 왕권의 방어적인 개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개혁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교와 성리학이었으며, 서양의 계몽절대군주들이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하에서 개혁을 추진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의 것이었다. 그래서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했다 역사문제연구소편, 『실패한 개혁의 역사』, (서울: 역사비평사: 1997), pp. 110~114.
라는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를 개혁적인 군주, 유교적 계몽절대군주라고 하는 표현이 일부 적용되는 점은 탕평책을 통한 정치투쟁의 완화와 보다 진보적인 백성관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조 자신의 개혁에는 일정부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새로운 정치, 사회 시스템 구축이라는 항속적인 개혁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교적 계몽을 추구했으나 그 실천적인 면을 살펴보면, 믿음의 정치가 아닌 마키아벨리즘적인 현실정치를 추구했고, 이는 결국 신권층으로 하여금 불신을 초래하고 정조 사후 반동적인 정치행태가 나타나게된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개방성의 면에서도 다소 부족함을 드러내주는데 서학에 대한 태도나 문체반정에서 드러나는 정조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정조 역시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었다.
정조의 개혁 실패는 결국 조선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개혁정치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정조 역시 지금 21세기 한국민이 살아가는 변혁기를 살아갔고, 변혁기에 대처하는 조선왕조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한계, 즉 정치권내의 갈등을 합리적이고 온건하게 해결하는 시스템 구축에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국력의 손실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21세기 개혁정부를 외치고 있는 현 정부, 그리고 앞으로 들어설 정부에도 큰 교훈을 던져준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정조시대에 대한 연구와 음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실패한 개혁의 역사』, (서울: 역사비평사: 1997)
이성무, 조선왕조사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