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사]연해주의 의병과 최재형
- 최초 등록일
- 2006.06.26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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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과 전공수업으로 해외독립운동을 배울때 제출했던 리포트 입니다. 모든 자료에는 각주와 설명이 되어 있고, 모든 자료를 다 찾아서 작성했던 리포트 입니다. 이 수업에서 A+ 받았습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한인의 러시아 이주
2. 한인사회의 형성
3. 연해주의 의병활동
1) 러시아 혁명
2) 연해주지역 의병부대
3) 13도 의군
4) 대한광복군 임시정부 수립
4. 최재형
1) 러시아의 이주와 자수성가
2) 재러 한인사회의 지도자로서 성장
3) 항일의병투쟁의 지도자
결론
본문내용
러시아로의 이주가 늘어나자, 조선 정부는 한(韓)인의 이주를 방지하기 위해 유민방지책(1867)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지책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어려운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여건으로 연해주로의 이주는 계속 늘어만 갔다. 특히 1869년 기사흉년(己巳凶年)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 게 되었으며, 이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이주하였다. 연해주로 이주한 한(韓)인들은 허허벌판으로 남겨져 있던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을 중심으로)의 황무지를 개간,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꿔 나가면서 한인촌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1869년 이후 한(韓)인의 대량 연해주 이주는 이전의 한(韓)인에 대한 러시아의 우호적인 정책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한(韓)인의 이주를 억제하는 동시에 기존이주 자를 국경에서 멀리 그리고 러시아인 촌락에 분산시켜 놓음으로써 한인 이민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처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책으로 한(韓)인들은 수이푼, 슈판, 레푸 강가 그 리고 수찬 계곡 등 내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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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처단 의거가 일어났다. 이에 이범윤은 유인석과 함께 안중근 의거를 국권회복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이범윤은 유인석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13도의군(十三道義軍)의 조직에 참여하였다. 13도의군은 만주·노령의 의병 지도자들이 안중근 의거를 계기로 투쟁역량을 결집하여 재차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고자 결성한 것이었다. 이는 연해주와 북간도 일대의 의병부대를 하나의 군단으로 통합함으로써 투쟁역량을 결집하고, 나아가 작전과 지휘를 단일 계통으로 통일하기 위해 1910년 6월 우수리스크 부근의 추풍에서 편성한 것이다. 13도의군은 도총재를 정점으로 실제 전투력을 지닌 창의군(彰義軍)과 장의군(壯義軍) 두 부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범윤은 창의군 총재, 경성의병 출신의 이남기가 장의군 총재로 각기 선임되었으며, 유인석이 도총재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이상설은 외교통신원으로 외교 통신과 사무, 그리고 조직을 관리하는 실질적 책임을 담당하였다. 안창호와 홍범도·이진룡·이갑 등은 동의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범윤과 유인석·이진룡·홍범도 등은 의병장 출신인데 비해, 신민회의 핵심인물들이었던 안창호와 이갑 등은 무장투쟁노선과는 종래 그 성격을 달리하던 계몽운동 계열이었다. 결국 이들이 13도의군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때까지 민족운동선상에서 무장투쟁 노선과 대립 혹은 갈등 관계에 있던 계몽운동 노선이 의병운동 계열과 공동전선을 모색하여 간 증거인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