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포은(圃隱) 정몽주
- 최초 등록일
- 2006.06.30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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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은(圃隱) 정몽주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포은(圃隱) 정몽주
1. 생애
2. 시대적 상황
3. 의리사상
4. 사회사상과 현실인식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려의 충신이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몽주’라는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정몽주, 역사상 중요한 려말.선초기에 정도전과 함께 주목받던 신진 유학자이나, 개혁에 실패한 인물로 생각되거나, 단순히 충신으로만 인식될 뿐 그의 사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것은 개혁세력에 의하여 조선왕조가 개창됨에 따라 정몽주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고, 그의 가족 또한 멸문의 위기에 처함이 한 이유가 될 것이며, 때문에 현재 정몽주에 대한 연구는 그의 시세계에 대한 탐독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사상가 였으며, 경세면에 있어서도 업적이 적었던 인물이 아니었다. 당대에 이루어졌던 개혁의 성과 가운데에는 포은의 역량을 통하여 일구어 낸 것이 적지 않았음이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단지 고려의 충신으로서의 정몽주, 한시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정몽주 보다는 유학자로서의 포은의 의리관과 사회사상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알아봄으로써 포은의 사상을 보다 넓게 이해해 보고자 한다.
Ⅱ. 포은(圃隱) 정몽주
1. 생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이고 호는 포은(圃隱)이다. 1337년 이름 없는 양반의 아들로 경상도 영일현 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몽란, 몽룡, 몽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아들의 출세를 바라는 부모들의 꿈 해몽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니 그의 부모가 자식의 뛰어난 재능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겠다.
정몽주의 생애를 크게 네 단계로 나눈다면 23세때까지 학문을 연마하고 과거시험공부를 하던 초년기(初年期), 24세부터 35세까지의 청장년시절 성균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강학 활동기(講學活動期), 36세부터 51세까지 중년시절 왕명을 받들어 중국과 일본으로 왕래하였던 외교 활동기(外交活動期), 52세부터 56세로 생애를 마치기 전까지 마지막 5년간은 고려왕조의 명맥을 붙들고 지키기 위해 헌신하였던 사직수호기(社稷守護期)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정성식 『포은과 삼봉의 철학사상』, 심산문화, 2003
․ 이은직 『한국사 명인전 1』, 일빛, 1994
․ 김명하 「여말정치 사상에서의 의리관 -포은과 야은을 중심으로-」,『동북아논총』,1998, 한국동북아학회
․ 정성식 「정포은의 역사의식과 사회사상」,『한국철학논집』,1991, 한국철학사연구회
․ 김충열 「포은사상의 재평가와 시대적 의의」,『한국사상사학』,1990, 한국사상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