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명성황후 관련 사료
- 최초 등록일
- 2006.07.17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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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성황후의 일생과 관련된 사료를 모두 모았습니다.
해석이 모두 되어있습니다.
목차
1. 고종실록(고종 3년 3월 22일)
2. 고종실록(고종 33년 을미년)
3. 황태자가 지은 실록
4. 명성황후 묘지문
5. 고바야가와 히데오의 명성황후시해 수기
본문내용
1. 고종실록 <고종 3년 3월 22일>
인정전(仁政殿)에서 축하를 받고 대사령(大赦令)을 반포하였다. 교서(敎書)는 이러하였다.
“왕은 말한다. 왕비가 집안 안을 잘 다스리니 집안에 도덕이 바르게 서서 천하가 안정되며 예의에서는 배필을 중요한 것으로 삼는 바 그것은 백성들의 시초이고 만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필을 맞아들이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니 나라의 기초가 반석같이 영원히 공고해졌다. 온 나라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에 보답하니 노래와 칭송하는 소리 온 강산에 퍼짐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임금의 정사는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꾸리며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기초로 삼고 있는 만큼 반드시 명철하고 어진 왕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늘과 종묘 사직(宗廟社稷)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배필을 직접 맞아들이는 예식이야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집안으로부터 고향 마을, 나라 안에서의 교화는 이로부터 시행되게 된다.
태임(太任)은 정성스럽고 공경스러운 훌륭한 덕을 후대에 많이 물려주었기 때문에 800년 동안이나 되는 오랜 기간 나라를 이어나갈 수 있었고 유신(有莘)은 순서 차례를 명백히 밝힌 높은 공적으로 하여 6, 7명의 임금들이 서로 대를 이어 훌륭히 계승해나갈 수 있게 하였다. 실낳이하고 천짜며 직접 길쌈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제사 그릇들을 직접 받들어 제상에 올려놓는 것은 선조(先祖)를 받들며 효도를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생각해보건대 나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여 지금까지 4년 동안 대왕 대비에게 의탁해왔다. 대왕 대비로 말하면 우리 집안의 순원 왕후(純元王后)의 빛나는 덕행을 계승하여 나라를 유지하고 편안하게 하는데 높은 공작과 훌륭한 업적을 쌓았으며 나로 하여금 돌아간 익종(翼宗)의 뜻과 일에 더욱 힘쓰도록 하며 보호하고 도와주고 가르쳐준 덕은 크고 그 은혜는 지극하였다.
제사지내는 달이 지남에 미처 이어 대왕 대비의 공덕을 찬양하도록 지시하였다. 세 전하는 대왕 대비의 모범을 생각하며 높이 칭찬하고 온 대궐 안의 여인들을 주부로서의 도리를 다하던 대왕 대비를 형상하여 노래불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