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역사]서울 명동의 역사와 특징, 변천과정
- 최초 등록일
- 2006.08.04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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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 명동(明洞)의 역사와 변천과정, 특징을 조사한 자료입니다.
일체 표절없이 명동을 직접 답사해서 찍은 사진을 첨부하고 정성껏 작성하였습니다.
총 11페이지이며, 직접 찍은 10장 분량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명동지역의 역사와 변천과정에 대해서 이보다 좋은 자료는 없을것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명동(明洞)의 역사
Ⅲ. 지역조사
1. 남촌의 변천과정
1) 조선시대의 남촌
2) 식민지 시기의 남촌
가. 식민지 시기 서울의 도시계획
(1) 경성시구개정사업(1912)
(2) 시가지 건축 취제 규칙(1913)
(3) 조선시가지계획령(1934)
나. 식민지 시기 남촌의 변화
(1) 가로망의 변화
(2) 거주지의 구조
(3) 근대적 도시시설의 입지
3) 해방 이후의 남촌
2. 명동의 특성과 역사적 관계
1) 상권의 중심지 - 일인(日人)들에 의해 건설된 근대적인 금융, 상업지구
2) 서울속의 작은 차이나타운과 패션의 중심지 - 명동의 오늘날 모습
Ⅳ. 나가며
본문내용
명동(明洞)이 속한 남촌(오늘날의 명동, 충무로 일대)은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권문세가들의 거주지역인 북촌(北村)과 대조되는, 몰락한 양반이나 벼슬길이 막힌 가난한 선비들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구한말 청나라 군대가 입성하면서 이곳은 청국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되었으며, 한일합방 후에는 다시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이 되어 일제 때의 명동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가이자 문화의 거리로 통하였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명동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한동안 예술과 유행의 메카로 화려하게 꽃피었는데, 1970년대 경제의 고속성장기에는 한국의 월가로 명성을 날리기도 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명동성당과 YMCA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의 발상지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1987년 6·29선언을 촉발한 ‘6·10항쟁’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명동이다.
오늘날 서울의 번화가는 그 중심위치가 강남지역으로 옮아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명동은 번화가로서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을 찾는다면 명동거리를 꼽고 있으며, 주말의 명동은 붐비는 인파로 대혼잡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가(地價)가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 바로 명동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이번 보고서 작성을 위해 우리는, 이와 같이 서울 번화가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명동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오늘날 패션, 금융과 산업의 중심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 명동의 형성이 역사적 사실과 어떠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 지역의 형성과 변천과정,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았으며, 마지막으로 명동 일대를 실제로 답사해보고 이를 통하여 문헌상의 내용을 직접 보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답사를 통하여 촬영한 사진은, 본 보고서의 본문 내용을 설명하는데 첨부하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