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의 이해]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인가?
- 최초 등록일
- 2006.08.15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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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역사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제출한 리포트입니다. 한국역사 중 일본과 논란이 일고 있는 칠지도를 왜왕에게 헌상하였는가? 아니면 백제왕자가 왜왕에게 하사한 것인가?에 대해 작성하였습니다.
표지포함하여 5장입니다.
한글2004 / 굴림 / 글자크기10 / 줄간격180%
목차
1. 칠지도의 발견
2. 일본의 주장 - 칠지도는 백제왕이 바친 헌상품이다.
3. 한국의 주장 -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이다.
4. 칠지도는 백제 근초고왕의 작품
본문내용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 있는 이소노카미 신궁은 신무천왕이 나라를 평정하는데 사용했다는 신검을 모신 곳이었다.
이 신궁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금족지가 있고, 창의 일종인 6차모라는 신기한 물건이 있다고 전해져왔다. 이 물건은 특수한 상자에 들어 있는데 그것을 여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인 1873년, 산궁의 주지격인 간 마사모토는 금족지의 신고(무기보관창고)에서 이 상자를 찾아냈다. 상자 안에는 몸체의 좌우에 어긋나게 양날을 가진 각 세 가닥씩의 가지, 즉 여섯 가지에다 몸통 윗부분에 마련된 양날까지 모두 일곱 개의 검을 갖춘 6차모가 있었다. 이것이 칠지도이다.
이 신성한 칼은 녹이 심하게 슬었으나 그 녹 사이에 반짝거리는 금빛을 확인하였다. 녹을 닦아내자 금상감기법으로...
...중략...
... 그러나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가 일본 중심적으로 창작·왜곡·윤색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한일 고대사학계의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구자들 중에 위와 같은 기술을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왜가 가야를 정벌하였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백제가 왜에게 가야의 땅을 받았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기술에서 역사성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백제가 왜와 외교적 교섭을 시작하던 것과 관련된 전승이란 점뿐이며, 백제에 앞서 왜와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가야가 그 중개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기술은 4세기 중엽 백제가 가야를 통하여 왜와의 외교관계를 시작하였던 역사적 사실이 일본 또는 백제 중심적으로 꾸며진 결과이다. 즉 『일본서기』만으로 칠지도 명문의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동시대의 자료인 칠지도 명문을 기초로 『일본서기』의 내용을 바로잡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칠지도 명문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주고받은 주체의 기술이다. 주는 사람이 백제의 왕세자로 되어 있고, 받는 사람이 왜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따라서 왜왕은 백제의 왕세자에 대응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칠지도는 백제가...
참고 자료
․ 조유전『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황금부엉이)
․ 칠지도 http://dugok.x-y.net/kor-his/art/7jido.htm
․ 한일관계사학회 http://www.hanilhi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