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자연이 빚어놓은 선경 “신비의 이상향” -천곡동굴
- 최초 등록일
- 2006.08.24
- 최종 저작일
- 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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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무릉계곡
무릉반석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천년고찰, 삼화사
동굴 속 볼거리(사진)
본문내용
무릉계곡
“山寺는 멀어도 비구름 가까워 천지구분 희미하다.
무심한 山水에 山客마음 급해지네.”
무릉계곡. 얼마나 아름다운 선경이었으면 무릉이라 했을까. 햇살이 눈 부시던날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으로, 물과 숲과 바위와 함께 신선놀음을 즐기러 간다.
무릉계곡으로 들어가는길. 무릉계곡의 모습은 아직도 겨울이 가시지 않았는지 모든 나무들이 벌거 벗은채로 오직 소나무의 변함없는 푸르름만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모습이 겨울운치와 함께 정겹게 느껴진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모든 계곡이 하나로 합쳐 이루어낸 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이곳은 고려 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살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맑은물이 흐르는 계곡 경치가 절경을 이루고 있어 무릉도원을 실감케 해준다.
무릉반석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릉반석이다. 이곳은 계곡안쪽으로 펼쳐진 넓디넓은 반석으로 여기저기 한문이름들이 새겨져 있으며, 한편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사실, 무릉계곡하면 ‘용추폭포’와 더불어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는 곳이 바로 이 ‘무릉반석’이다. 그런데 ‘이 반석위에 이름을 새겨놓은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자신을 알리기 위함이라든지, 일종의 자연훼손으로 보일수도 있으나, 이는 ‘우국충정’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조선왕조 5백년 역사는 쇠퇴해 가고 외세의 횡포가 날로 어지러운 때에 울분을 달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지방 선비들이 ‘금란계’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는데, 무릉반석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이 바로 그 계원들의 이름인 것이다. 무릉반석 옆에 있는 금란정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세워진 정자인데 여기에도 계원들의 이름이 걸려있다.
이런 무릉반석에 새겨진 ‘이름석각’들은 단순한 이름 석자가 아니라 금란계원들의 ‘곧은 결심’을 후세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웅석인것이다. 또한 이름 외에도 꽤나 큰 글씨로 새겨진 초서가 있다. 조선 4대 명필 중에 꼽히는 봉래 양사언은 이반석에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台泉石頭陀洞天)’이라는 글씨를 남겼다. ‘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너른 암반과 샘이 솟는 바위,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버린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글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석에 올라 가까이에서 보는것보다는 금란정 바로 옆에 무릉반석 내려가는 길왼편에 좌대같은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잘 보이며, 특히 양사언의 초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