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유년시절의 동네를 추억하며

소개글

유년시절의 주거 경험이 현재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1. 나무 많은 집
2. 다락방의 꽃
3. 날개 잃은 피아니스트
4. 내 친구 한석이

본문내용

2. 다락방의 꽃

나무 많은 우리 집은 팔리고 이전 집의 반 크기도 안되는, 그나마 마당은 반의 반도 안되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마당은 더이상 흙바닥이 아니라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보기만 해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고, 화단은 벽돌을 사선으로 놓아 구분되어 있었는데 한 평 남짓 되는 그 공간도 무뚝뚝한 누런 잡종개가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갑자기 열악해진 환경에 별 불만을 갖지 않았던 것은, 기울어진 가세를 걱정하는 부모님을 생각할 만큼 철이 들어서가 아니라 "다락"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방 세 개를 모두 월세로 내 놓은 부모님은 안방과 통하는 세 평짜리 다락을 내 방으로 꾸며 주셨다. 벽에는 어설픈 솜씨로 벽지가 발리고, 천장에는 검정 테이프를 칭칭 감은 굵은 전선에 노란 백열등이 매달렸다. 쥐가 오가는 지 천장에서 가끔씩 우루루 소리가 났지만 난 다락이 좋았다. 두 손을 괴고 엎드려야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때때로 지나다니는 기차의 칙칙 폭폭 소리가 참 따스했다. 옆집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릴 때면 리코더를 가져와 불기도 하고, 밤늦게 창문 밖 골목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나면 `아빠가 오는가 보다` 하면서 가슴뛰기도 했다. 모두 잠든 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으면서 여기가 안네가 숨었던 `숨은 집`이라고 상상해 보며 그녀의 삶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을까, 나름대로 낭만도 있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후로 결혼한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방이라는 걸 가져 본 일이 없다. 청년기까지 언니와 같은 방을 썼고 결혼한 이후로는 남편과 한방을 쓴다. 죽는 날까지 부부로 살 것이니 아마 앞으로도 내 방을 갖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