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삼국시대의 언어
- 최초 등록일
- 2006.09.09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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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서적에 나오는 삼국시대의 언어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국어국문학 어학관련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 ^
목차
1. 고구려어와 삼한어
2. 고구려어와 신라어
3. 서동은 두 개 국어에 능통했는가
4. 백제어와 고구려어
본문내용
1. 고구려어와 삼한어
3세기에 쓰여진 『삼국지』동이전에 따르면 현재의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의 언어분포는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다. 부여ㆍ고구려ㆍ옥저ㆍ예(濊)의 언어, 읍루어, 삼한지역의 언어가 그것이다.
고구려가 부여ㆍ옥저ㆍ예를 통합함으로써 고구려어는 이들 부여어ㆍ옥저어ㆍ예어를 대표하게 되었다. 한편 신라는 삼한의 하나인 진한에 속해 있던 사로국이 발전한 나라였으므로 부여어 또는 고구려어와, 삼한어 혹은 진한어의 관계를 알면 고구려어와 신라어의 관계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삼국지』동이전에는 두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먼저, 두 언어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두 언어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아, 결국 고구려어와 신라어는 달랐다는 해석이 있다. 이 경우 집단거주지역의 지명어휘에, 고구려어에서는 ‘홀(忽)’이 많이 쓰이는 반면, 신라어에서는 ‘불[火]’이 많이 쓰이고, ‘물[水]’을 뜻하는 고구려어는 ‘매(買)’이지만, 신라어는 ‘물(勿)’이라는 점 등의 차이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부여어 또는 고구려어 등의 언어와 삼한 지역의 언어가 같았는가 달랐는가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곧 두 언어가 서로 달랐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구체적인 검토 없이 서로 같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서로 달랐다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국지』동이전은 244년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얻은 지식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군대의 침입로에 있던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등의 지역은 상세하게 기술하였으나, 삼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세하게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두 언어 사이의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지, 달랐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 고구려어와 신라어
고구려어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국사기』지리지에 보이는 지명표기를 통해서 유추해낼 수 있다. 하나의 고구려 지명에 대하여 한자의 음을 이용한 표기와 뜻을 이용한 표기와 함께 기록된 예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들 음표기의 일부분과 뜻표기의 일부분 사이에 일정한 대응관계가 발견된다. 예를 들면, 한자로 ‘성(城)’을 뜻하는 것이 고구려음으로 ‘홀(忽)’이고, ‘내[川]’ㆍ‘물[水]’을 뜻하는 것으로는 ‘매(買)’였다. 이렇게 『삼국사기』지리지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고구려 단어는 80여 개이고, 그 중 둘 이상의 지명에서 확인된 신빙성이 높은 것은 20여 개다.
참고 자료
한국역사연구회,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