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초기백제사 왜곡 논쟁
- 최초 등록일
- 2006.10.02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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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용산박물관 ‘원삼국시대’논란, 일그러진 고대사.
Ⅱ. 본론
1. 잘려나간 초기백제사
2. 풍납토성, 초기백제사를 복원시킬 수 있을까?
3. 역사를 갉아 먹는 식민사관
Ⅲ. 결론 : 초기백제사 왜곡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본문내용
Ⅰ. 서론 : 용산박물관 ‘원삼국시대’논란, 일그러진 고대사.
2005년 10월 28일 개관한 새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고고관 입구에 걸린 고고학 편년표가 논란을 빚었다. 여기에 고조선이 빠져 있다는 여론이 제기되자 박물관은 이를 받아들여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표시를 넣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고고학계의 주류적 학설을 집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 고고학 편년표에서 `원삼국시대`표기는 큰 논란을 야기하였다.
바로 `원삼국`(原三國)이라는 용어가 지닌 문제점 때문이었다. 원삼국이란 신라. 고구려. 백제의 3국이 본격적으로 정립(鼎立)하기 전이라는 의미로 영어로는 `proto-Three kingdom period`로 번역된다. 절대연대로 환산하면 서력기원 전후에서 서기 300년 무렵까지가 해당한다. 이러한 기록은 신라와 백제는 엄연히 기원전 1세기에 건국했음에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두 왕조의 실질적 건국시기를 4세기 이후로 보는 일본 식민사학을 답습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나아가 이는 결국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4세기 이전 신라와 백제의 존재를 말살하려 한 식민사학과 상통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초기 백제사는 그 왜곡 정도가 심하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서에서 초기 백제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한성백제의 도읍이나 그 무렵의 문화 등의 기록에 대해서 알려진 바도 없을 뿐 아니라 주류 학계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나는 한 학기 동안 고대사를 배우면서 가장 많은 관심이 갔던 것이 바로 백제사 이다. 백제사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온통 왜곡으로 얼룩져있고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하는 백제사는 자랑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었다. 풍납토성의 발굴로 인해 이미 학계가 한차례 흔들린 후이다. 백제사, 특히 초기 백제사에 대한 재조명, 재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하고 이제 시작해도 늦은 것이리라.
따라서 나는 초기 백제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