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인의 역사의식
- 최초 등록일
- 2006.10.18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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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의식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설명하는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2. 고려시대
3. 성리학적 역사서술
4. 실학파의 역사의식
5. 근대 역사의식
6. 분단시대의 역사의식
본문내용
1.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유기>라는 역사서가 기록되었고, 백제는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서기>를, 신라는 진흥왕 때 <국사>를 편찬했다. 이들은 모두 국가팽창단계에서 나타났고 샤머니즘적 세계관으로 체계화하되 왕실의 권위를 높이도록 편찬했을 것이다. 남북국시대에는 불교 및 유교적 역사인식이 폭넓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신라하대에 쓰여진 <帝王年代曆>에서는 “마한은 고구려이고, 변한은 백제이고, 진한은 신라이다”라고 인식한 삼한설은 이후 고대사체계 인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다.
대체로 이 시기까지의 역사서술을 살펴보면 역사의 주체자는 왕실 및 왕실과 혈연적으로 연결된 중앙귀족으로, 대상세계는 천상계와 직접 연결되는 신성왕권이 다스리는 천하세계, 즉 국가를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유아독존적 국가의식으로 그리고 종교적이고 낭만적으로 서술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2. 고려시대
고려 초기에는 본기만 있는 편년체 사서로 고구려-고려 정통을 내세운 <구삼국사>가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고, 고려 중기에는 유교사관으로 우리나라 고대사를 체계화한 <삼국사기>가 편찬되어 현재 전해지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동명왕편>이 저술되었는데, 우리 문화의 기원을 하늘과 연결해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성을 찾고, 독자적인 혈연공동체·문화공동체를 인식한 부분들이 후일 민족의식의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13~14c 원의 침략과 간섭 시기에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같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역사의식에 투영되기도 하였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단군-기자-위만으로 이어지는 ‘3조선설’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이 설은 16c까지 큰 영향을 주었고 전통적 민족의식의 확립으로 평가되어 진다.
전반적으로 볼 때 고려시기는 역사의 주체자는 국왕 및 귀족적 관료세력으로 인식하였다. 세계관은 유아독존적 천하의식에서 탈피하는 세계관의 확대를 가져와서 한 편으로는 사대적 의식으로, 한 편으로는 독자적 역사공동체의 특성을 재인식하는 민족적 의식으로 전개되었다. 서술방식은 유교사관이 도입되어 인간적 합리성을 보다 중시하는 바탕에서 학문적 체계화로 향했다.
참고 자료
한국사 특강
전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