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16군부 한일관계
- 최초 등록일
- 2006.10.30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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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와 5.16 군부와 한일협정을 둘러싼 대외적 ,대내적 관계에 대해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만주친일파
2) 쿠데타과정 : 친일파의 합류
3) 박정희 시대의 한일관계
4) 한일회담 과정에서의 문제점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는 수천년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 관계는 그러나 서로 죽고받은 선린의 역사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은혜를 전하고 그 대가를 오직 원수로 돌려 받은, 고약한 관계였다. 우리는 임진 ․ 정유 양란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침략으로 많은 피해와 문제를 남겼다. 그 중 광복 60년이 지난 현재, 친일파 잔재 청산 문제는 지금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 문제 중 하나가 박정희정권과 한일협정에 관한 것이다.
이제 만주친일파와 박정희 정권과의 관계, 그리고 한일협정에 관한 친일적 요소들에 대해알아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2. 본론
1) 만주친일파
1931년 대동아공영권의 슬로건을 내건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여 이듬해 3월 청나라 황족 푸이를 내세워 일제의 첨병 역할을 할 만주국을 건설하였다. 만주는 소련의 남하를 막고 병참기지로 활용가치가 높은 땅이였다. 그리고 만주가 3.1운동이후 무력대일항전(武力對日抗戰)이 활발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독립운동을 근절시키기 위한 적합한 장소였다. 만주국의 권력은 관동군 중심의 일본 군부가 쥐고 있었으며, 1932년 일제는 만주국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민중을 교화하기 위한 만주국 협화회를 우선적으로 결성했다. 만주국 의회 성격인 협화회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등 5개 민족이 화합하는 이상형의 국가를 주창하고 나섰다. 하지만 협화회는 소위 민중조직이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비밀공작을 위한 특무조직이였다. 즉, 일반적인 민중조직인 동시에 내부에는 특무가 있는 것이다. 협화회의 선무반, 특별공작반 등은 완전히 일본군 토벌대와 같이 독립운동 세력을 토벌하는 것이 그 목적에 있었다. 당시 이 협화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조선인은 윤상필, 최남선(崔南善), 윤극영(尹克榮), 이범익, 이선근(李瑄根) 등이었다.
참고 자료
민족문제연구소.『한일협정을 다시 본다-30주년을 맞이하여』.서울 : 아세아문화사, 1995.
이도성 편저.『실록 박정희와 한일회담(5.16에서 조인까지)』.서울 : 도서출판 한 송,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