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기독교와평화
- 최초 등록일
- 2006.10.3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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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Prolog
2. 구약의 평화
3. 신약의 평화
4. 결론
5. 사견
6. 팍스 아메리카
본문내용
1. Prolog
명장 “알기비아데스”가 사원에서 신탁을 받기 위해 명상중인 “쏘크라테스”에게 은근히 물었다. “스승이여 평화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소크라테스는 한참이나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부모의 장사를 자손들이 치를 수 있는 시대가 곧 평화 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대답이여서 그 질문자는 정 반대를 물어보았다. “그럼 전쟁은 무엇을 두고 말합니까?” 이번에는 즉각 서슴치 않고 하는 답변이, “부모가 자식의 무덤을 파야할 그 시대를 전쟁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함축성은 일반적으로 “평화”를 말할 때 상극현상인 전쟁과 관련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인 해석인데 이에 비하여 성서가 말하는 “평화”와“평안”은 총괄하여 해석하므로 종교적이라고 하는 점이다. 평화를 사회적,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에서 봐야하고 그중 기독교관점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평화의 기초가 사회학과 정치학이기에 앞서서 근본적으로 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성을 좀더 다른 각도에서 설명해 본다면, 평화에 대한 성서적 사상이 별개의 독립적인 사상이 아니라 전체적인 성서의 진리에 속하는 일부이며 동시에 성서의 진리가 보편적으로 외원에 속하는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일반사상에 의하여 먼저 타당성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크리스천 개인과 공동체인 교회에게 바로 진리라고 인정받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 반대로 성서의 진리가 먼저 크리스천과 공동체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현재나 과거 역사에 진리 됨이 경험되었고 이렇게 먼저 내원적인 경험에서 진리였음이 보편적인 의원으로 파급해 나가는 과저에서 그 진리의 객관성이 주자되기 때문에 성서에서 발견하는 평화사상도 그러한 성서의 진리의 원칙에 서서 음미되어야만 건전할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하나의 나무에 비할 수 있는 것 같이 유기적 생명체이여서 땅속에 묻혀 있는 뿌리와 땅 위에 눈에 보이는 나무 중 그 하나의 나무가 아닌 것은 없다. 그러나 신약의 예수사상이 구약의 모든 예형적 의미(멜기세덱이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것)를 푸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신약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역시 구약적 평화의 의미를 조심 조심 파 봐야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