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주의
- 최초 등록일
- 2006.11.04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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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입체주의(cubism)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의미
2. 입체주의의 탄생
3. 분석적 입체주의
4. 입체주의와 작가
5. 입체주의 작품의 이해
본문내용
1. 의미
20세기 초 야수파(포비슴)운동과 전후해서 일어난 미술운동.
입체파라고도 한다. 그 미학은 회화에서 비롯하여 건축·조각 ·공예 등으로 퍼지면서 국제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 특질은 무엇보다도 포름(forme)의 존중에 있으며, 인상파에서 시작되어 야수파·표현파에서 하나의 극(極)에 달한, 색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보인다.
자연을 재구성할 것을 목표로 한 세잔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으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원근법(遠近法)의 대가인 우첼로, P.D.프란체스카, 17세기 프랑스의 G.드 라투르 등에서도 입체파적인 추구를 발견할 수 있다. 또 나무를 쌓아올린 것 같은 입체표현에 뛰어난 루카 칸비아노, 프라체리, 독일의 뒤러 등도 입체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2. 입체주의의 탄생
“자연을 원통형·구체(球體)·원추형에 의하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에밀 베르날에게 보내는 편지, 1904년 4월)라고 하여 “색채 속의 면(面), 그 면을 정확히 파악할 것, 이러한 면을 조립하고 융합시킬 것, 그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서로 결합되도록 할 것”(G.가스케 《세잔》) 등을 제작목표로 한 세잔이 이 운동의 직접적인 선구자였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07년 살롱 도톤에서는 그 전년에 사망한 세잔의 회고전이 열렸으며, 젊은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 회장에서 세잔이 특히 1880년대에 그린 구축적(構築的)인 화면에 매혹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1908년을 입체파 탄생의 해로 친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다같이 기하학적인 포름, 예를 들면 구체(球體)·삼각추(三角錐)·원통형·입방체(立方體) 등을 응용하여 대상을 마무리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초기 입체파를 ‘세잔풍의 입체파’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래 입체파(큐비즘)라는 명칭은 인상주의를 비롯한 근대의 혁신적인 운동이 일반대중에게는 인정되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경멸적으로 사용된 비난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입체(立體:Cube)란 최초로 비평가인 R.보셀이 브라크의 작품에 붙인 이름이다. 보셀은 1909년에도 브라크의 작품에 대하여 몇 차례 ‘기묘한 입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입체파의 창시자인 피카소와 브라크가 세잔의 계열을 따른 새로운 화면구성을 의도하면서도 반드시 ‘기교(奇矯)함’을 중시하지 않았던 사실은 다음의 두 사람의 문장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입체적으로 사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달리 큐비즘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저 우리의 마음에 끌린 것을 표현한 데 지나지 않았다”(피카소), “내게 있어 큐비즘이란 내 습관에 적합한 입체적인 표현수단이며 이것을 이용하면 나는 자신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나의 큐비즘이라고 말해두기로 한다”(브라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