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리학과 예술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11.0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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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시대 예술 사상에 성리학적 요소를 알아보고 철학이 시대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분석해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예술에 대해 거시적인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진경시대로의 초대
2. 18세기 조선 성리학의 심화
- 호락논쟁(人物性同異論)
3. 조선 후기의 예술 세계
- 조선후기의 문풍과 진경시문학
-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화풍
-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예술
- 진경시대의 백자와 서예
4. 조선 성리학과 예술사상 토론
본문내용
1. 조선 왕조의 문화 절정기, 진경시대로 들어가며(발표:김혜준)
- 조선성리학의 성립과 진경시대의 이념적 배경
‘진경시대’는 조선 왕조 후기 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였던 문화절정기를 일컫는 문화사적인 시대 구분 명칭이다. 그 기간은 조선 숙종(1675~1720)대에서 정조(1777~1800)대에 걸친 125년간이라 할 수 있는데 숙종 46년과 경종 4년의 50년 동안은 진경문화의 초창기라 할 수 있고, 영조 51년의 재위 기간이 그 절정기이며 정조 24년은 쇠퇴기라 할 수 있다.
진경문화가 이 시대에 이르러 이처럼 꽃을 활짝 피워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의 뿌리가 되는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이념이 이 시대에 이르러 완벽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원래 조선 왕조는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천명하여 개국한 나라였다. 그래서 원(元) 지배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수용해 들여 아직 선구적인 학자들만이 그 얼개를 짐작하고 있는 생소한 이념인 주자성리학을 이념기반으로 하여 새 왕조의 문화를 창조해 가게 되니 조선 전기 문화 전반에서 중국풍이 만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의 뿌리를 옮겨다 심었으니 당장은 중국 꽃이 그대로 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자성리학 이념도 우리 문화 풍토 속에 들어와서는 이에 적응해 가면서 변질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 선조들은 이 중국 발원의 주자성리학 이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난 다음 발전적으로 심화(深化)시켜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이념을 창안해 놓는다. 그 고유이념 창안의 장본인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인데, 율곡이 조선성리학을 창안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 세대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주자성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이념체계의 요체인 이⋅기(理⋅氣)에 대한 연구를 주자 이상으로 진전시켜 놓았었기 때문이었다.
‘주자성리학’이라는 것은 우주의 생성원리를 불변적 요소인 이(理)와 가변적 요소인 기(氣)의 상호작용으로 보고, 인성과 물성이 모두 그에 의해 결정되니 부선억악(枎善抑惡)으로 인⋅물의 성정을 다스려야 된다고 하는 유교철학이다. 그런데 주자 단계에서는 이기(理氣)의 상호작용 시 불변적 요소인 이 자체도 기의 작용에 감응하여 변화한다는 이기이원론을 주장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런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 퇴계였으며, 고봉 기대승 같은 이는 이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여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율곡은 일찍이 금강산으로 출가하여 불교 대장경을 섭렵함으로써 주자 성리학의 우주론적 철학체계의 원형인 불교철학을 근본적으로 관통한 실력을 바탕으로 퇴계의 이기이원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이기의 상호작용시라도 기만이 작동하고 이는 기에 편승할 뿐이라는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을 주장하여 만물의 성정이 기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기일원론으로 심화시켜 놓는다. 결국 이는 만물이 공통적으로
참고 자료
안은수,「이간의 미발론 분석」, 논문 인용
http://blog.daum.net/pjm0808/7084619
최완수 외,『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1』, 정옥자,「조선 후기 문풍과 진경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