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정책
- 최초 등록일
- 2006.11.14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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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루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은 무역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지는등 여러 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는 유럽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양국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것으로 파악된다.
목차
1)머리말
2)포르투갈
1.해외제국의 형성과 확장
2.대서양 제도들의 식민지 사업
3.조직과 통치
3)스페인
1.신세계의 정복
2.대서양 제도들의 식민지 사업
3.아메리카의 정치 및 행정기구
4)맺음말
본문내용
1)머리말
이베리아 반도, 즉 유럽 남서부 끝에 위치한 이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으로 아무 이익을 얻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철저한 카톨릭 국가로서 이슬람인들의 ‘재정복(Reconquista)’ 계획도 실행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하여 일찍 통일 국가를 형성하였으므로 이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있었다. 물론 영국이나 프랑스도 강력한 왕권을 일찍 확립하였으나 영국은 ‘북해무역’을 통하여, 프랑스는 ‘지중해 무역’을 통하여 어느 정도 이익을 얻고 있었으므로 신항로 사업에 소극적이었고, ‘한자 도시’ 중세 중기 북해․발트해 연안의 독일 여러 도시가 뤼베크를 중심으로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이었던 한자동맹에 소속한 도시를 말한다.
들은 이 사업을 행할 만큼의 재력도 없었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였다. 따라서 탐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첫 번째 시대와 이를 통해 유럽의 지평이 넓혀져간 과정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당연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개척자들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신대륙 발견 후 양국의 식민지정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2).포르투갈
지중해 중심의 유럽에서 대서양 중심의 유럽으로 넘어가는 긴 역사의 출발점에 세우타라는 도시가 있었다. 아랍인들에 의해 대서양 연안에 건설된 최초의 항구도시. 오늘날 국왕의 통치하에 있는 북부 아프리카 해안의 천연요새, 엄밀히 말해서 세우타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였지만, 이슬람 세력이 지브룰터 해협을 거쳐 대서양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을 갖춘 곳이었다. 즉 이슬람 문명권과 기독교 문명권간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세우타였다. 당시 포르투갈은 대서양 연안을 공유하고 있던 카스티야 왕국보다는 작은 나라였다. 하지만 카스티야 왕국은 아라곤 왕국과 힘을 합쳐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하기 이전까지는 해외로 눈을 돌릴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바다라는 자연적 포위망을 뚫고 아프리카 대륙에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오랜 숙원을 지니고 있다. 이때 주앙 1세와 그의 아들 엔리케는 대서양을 넘어 세우타를 정복할 꿈을 천천히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포르투갈 왕실은 세우타 정복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에 전초기지를 마련해둠으로써 아프리카 연안의 대서양과 아프리카 내륙지역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취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서양을 더욱 남진해 내려갈 야망을 키우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열망은 경제적 이익 자세히 말해 황금이나 당시 고부가치상품이었던 향료 대한 열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크게 작용한 것은 물론이다.
참고 자료
西洋近世史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 왈라스 클리퍼트 퍼거슨 저, 집문당, 1989
스페인․포르투갈史, 姜錫永․崔榮秀 共著, 大韓敎科書, 1988
대서양문명사, 김명섭 지음, 한길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