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인
- 최초 등록일
- 2006.12.01
- 최종 저작일
- 2006.10
- 1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중인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
아주 열심히 만든 자료예요~
목차
1. 머리말
2. 중인의 개념
3. 중인 신분의 성립
4. 중인 신분의 구성
5. 중인의 정치적 행동양식
6. 중인의 경제적 행동양식
7. 중인의 사회적 행동양식
8. 중인의 문화적 행동양식
9.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 사회에 성리학이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16세기 이후의 신분구조는 양반과 상민의 차별을 두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성리학을 바탕으로 양인 내부에서의 신분적 분화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중간 신분층이 생기고 17세기에 중인은 신분 신분은 사회구조 속에서 장기적이고 세습적으로 형성 유지되어 온 것이다.
적 독자성을 보다 분명히 하게 된다. 즉, 중인은 17세기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조선말기까지 잡과를 일부 명문씨족에 편중시켜 문벌을 형성시켜갔고 세습하여갔다. 또한 중인 안에서 신분내의 결혼을 행함으로써 자신들의 신분을 더욱 공고히 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신유사옥이 일어나기 전까지 천주교의 지도층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18세기 이후 에는 향촌 사회에서 몰락 양반이 속출하고 반면 경제적으로 성장한 상민층이 하층 양반으로 상향 이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양반 신분 자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퇴색되어갔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중인 집단도 신분적 위상의 변화를 걷게 되었다.
이처럼 신분 분화가 일어나는 동안 중인들은 양반 신분으로부터 배제된 자신들의 신분적 처지를 분개하면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자신들이 향유하게 된 제한된 특권의 유지에도 힘쓰는 독특한 중인 문화를 발전시키고, 조선 시대 말기의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적극적인 정치, 사회적 진출의 길을 모색해나갔다.
이에 본론에서는 우선 중인의 개념과 신분 성립 과정을 알아보고 다음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중인의 행동양식을 살펴 보고자한다.
2. 중인의 개념
중인이란 용어는 초기에는 주로 고급 기술관원을 지칭했으나 중기 이후 그 의미가 확대되어 반(班)·상(常)의 중간신분층을 총칭하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우선 조선초의 중인은 한성의 중심가에 살던 역관(譯官) · 의관(醫官) · 산관(算官) · 율관(律官) · 음양관(陰陽官) · 사자관(寫字官) · 화원(畵員) · 도류(道流) 등 중등 정도의 품격(品格)이나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는 좁은뜻의 기술관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잡과 시험이나 취재를 거쳐서 뽑힌 기술관원들로서 모두 정식관원이며 조선초에는 양반의 일원이었으나 점차 양반관료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신분 범주로 굳어져갔다. 이때 중인이라는 명칭은 중간신분층로서의 중인이 아니라 그들의 거주지가 한성의 중심부인 데서 생겼다는 견해와, 당론에 가담하지 않는 중립분자들이기 때문에 중인이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견해가 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1. 한국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2. 김필동, 『차별과 연대』, 문학과지성사, 1999
3. 김현영,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회사』, 2003
4.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1996
5. 이성무, 『조선 초기의 鄕吏』, 한국사연구회, 1970
6. 김필동. 『조선 후기 지방 이서 집단의 조직 구조(상,하)』, 일지사, 1982.
[참고사이트]
1. 엠파스, <한국백과특집>, http://koreandb.kdaq.empas.com/index.html
2. 다음,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top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