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 최초 등록일
- 2006.12.03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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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전통문화의이해라는 과목에서 발표자료로 준비했던 것입니다.
굿으리는 주제로 쉽게 풀이 해 놓은 리포트입니다.
목차
1. 굿의 의미
2. 굿의 기능과 목적
3. 굿의 절차
4. 굿의 구성
5. 지역에 따른 굿
6. 문화 속에 반영된 굿
본문내용
Ⅰ. 굿(㖌)의 의미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무당이 노래와 춤으로 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제의식(祭儀式)으로 굿은 기본적인 제의절차가 유형화되어 있고 무가(巫歌)·무무(巫舞)·무복(巫服) 등 고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 유동하는 융통성과 통용성을 가지고 존속되고 있다. 즉, 무당이 원시 종교적 관념에 의하여 주재하는 새신(賽神)의식의 총칭이다.
Ⅱ. 굿의 역사
굿에 관한 첫 기록은 <삼국유사>-(제2남해왕(第二南解王)조)에서 볼 수 있는데, 남해왕은 ‘차차웅’ 이라고 불렸고, 이는 방언으로 무당의 뜻이라고 적혀 있다. 또 남해왕 3년에 시조인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낼 때 왕의 누이동생인 아로가 주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조에 대한 제사를 굿과 비교할 근거는 없으나 무당의 대부분이 여자인 점을 감안할 때 굿과의 관련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가장 무속적인 의례는 신라 진흥왕 때 시작된 팔관회로서 이는 곧 나라굿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 규모로 거행된 이 행사는 토속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으로 축제의 성격을 지녔으며, 국선이라는 일종의 나라무당이 주관하면서 고려 때까지 이어졌다.
굿과 가장 비슷한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은 고려 중엽인 12세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는 (노무편(老巫篇))이라는 장시이다. 내용은‘대들보에 머리가 닿도록 무당이 겅중겅중 높이 뛰면서 휘파람소리를 내고 스스로를 제석천이라고 부르면 남녀노소가 그 아래로 구름같이 모여든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신들린 무당이 굿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를 통하여 12세기 무렵에는 무당굿의 틀이 어느 정도 짜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늙은 무당이 당시 수도인 송도성 밖으로 쫓겨난 것을 저자가 기뻐하면서 비판적인 안목으로 썼다는 사실로 미루어, 무속이 지배계층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굿은 지배층에서 밀려난 서민들의 종교로 정착하였다. 무당을 불러 굿하는 것은 낭비이니 유교식 제사로 대치하라는 나라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여전히 굿판을 벌이고 무당을 찾았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이 많은 학자들을 동원하여 한국의 사회역사종교풍속 등을 정밀히 조사하게 되면서 마을 단위의 굿이 한국인의 정신적 원형질로, 예로부터 꾸준히 지역주민의 유대감 형성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심한 박해를 가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