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청계천 복원의 의미와 미래
- 최초 등록일
- 2006.12.0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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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역사 그리고 재개발을 통한 현재의 모습들을 조사했습니다.
좋은 점수를 받은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 됐습면 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
1. 청개천의 역사와 소개
2. 복원 및 변화
2-1 복원 사업 관련 사항
2-2 숫자로 본 청계천
2-3 청계천 복원에 따른 효과
1. 경제적 효과
2. 사회 문화적 효과
3. 환경적 효과
Ⅲ. 청계천 복원의 문제점
1. 교통 문제
2. 물 공급 문제
3. 자전거 전용 도로의 연속성 결여
4. 주변개발에 대한 무분별한 장밋빛 환상 제시
Ⅳ. 청계천의 미래
Ⅴ. 참고 문헌
본문내용
I. 머리말
2005년 10월, 콘크리트에 묻혀 있던 청계천이 맑은 물이 흐르는 도심 계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로수를 심고, 스물두 개의 아름다운 다리를 놓아 서울 한복판이 살아 있는 자연공원으로 바뀌었다. 풀 냄새를 맡으면서 걷다 보면 물고기와 곤충이 모여 사는 여울을 만날 수도 있다. 노점상이 떠난 주변 기계들은 새롭게 단장되고, 문화 공간도 마련되어 쇼핑과 문화생활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청계천은 자동차들의 매연과 소음이 가득하던 곳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숨 쉬는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옛날 청계천 주변의 장터와 노점에서는 진한 사람 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 봐도 봐도 새로운 볼거리가 있어 질릴 틈이 없고,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일행을 잃어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이런 모습은 추억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진풍경을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청계천은 푸르게 변한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Ⅱ. 청계천 어제와 오늘
1. 청계천 역사와 소개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 상태의 하천이었다. 개천에 대한 정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태종 때부터였다. 태종은 즉위 초인 1406년부터 1407년까지 자연 상태에 있었던 하천의 바닥을 쳐내서 넓히고, 양안에 둑을 쌓는 등 몇 차례에 걸친 정비로 하천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태종 때, 개천공사가 주로 개천 본류에 대한 정비였다면, 세종은 지천과 작은 계천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세종 때 주목할 만한 사항은 청계천의 성격을 도심의 생활하천으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서울을 조선의 수도로 정할 때 풍수학 상으로 서울 둘러싸고 있는 외수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것에 대응하여 도성 한가운데를 흐르는 내수 청계천이 한강과는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려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성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하수도 시설이 없었던 당시로서 청계천에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이 흘러들 수 밖에 없었다.
청계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조선 500년 동안 불리어 오던 개천이라는 이름대신에 청계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지만 정작 청계천 자체는 대한제국 이후 약 10여 년 동안 방치되었다. 일본은 청계천을 이름 값 못하는 탁계천 이라고 비웃었다
참고 자료
■ 김성환 저 「도시 오픈스페이로서 하천의 복원 및 활용」
■ 기상청 「청계천 주변 기온 특성 분석」
■ 동아일보
■ 연합뉴스
■ Science Times
■ 단국 대학교 문헌
■ 고려 대학교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