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이규보와 이인로의 문체배경
- 최초 등록일
- 2006.12.13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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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규보와 이인로의 용사와 신의를 다룬 내용입니다.
조선시대 사장가의 문학관을 가지로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이규보와 이인로의 문체배경
이인로의 用事와 이규보의 神意
마무리
당시 조선시대의 문학사상
사장가의 문학관
본문내용
<이규보와 이인로의 문체배경>
- 무신란 이후 살아남은 문인들이 도피와 향략의 생활을 하면서 문학에 탐닉했기 때문에 문학이 융성할 수 있었다는 설명은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인로의 경우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규보 이하 문인들은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없으며, 도피와 향략의 생활에서 문학이 융성할 수 있었다는 일반론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이규보 이하의 문인들은 물론 이인로까지도 무신정권에서 벼슬을 하고 무신정권에 협력하는 방향에서 사회에 참여하고 있었으므로, 이와는 다른 견해가 필요하게 된다.
무신란 이전의 문인과 이후의 문인은 동질적인 문인이 아니다. 문인이라는 범칭은 역사적인 개념이 아니며, 어떤 사람들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글을 쓰는가는 역사적인 시기와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무신란이 문신들의 몰락을 가져왔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끼친 것은 구시대의 문인에 대한 것이고, 낡은 문학에 대해서이다. 신라 이래의 오랜 인습을 지켜오며, 문벌에 의해서 권력을 독점하고, 외세에 대항해서 나라를 지키려는 민족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자기들의 안일을 도모하는 데 힘을 기울인 문벌 귀족인 문신들의 특권의식, 사대의식, 형식주의, 보수성과 관련된 문학이 파괴된 것이다. 이러한 문학은 청산해야 할 인습이었다는 점에서 파괴될 것이 파괴된 셈이며, 무신란은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무신란 이후 문학의 새로운 동향은 이러한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규보는 그 주역으로서 주목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그와 대비되었던 이인로의 이해 또한 필요한 것이다.
이규보는 무신란으로 전시대의 문학이 파괴되자, 그 뒤를 이어 일어난 새로운 문학의 선구자이고, 그 가장 발달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무신란 이전의 문학을 회복하는 고정에서 이규보가 나타났던 것도 아니고, 최씨 정권의 문객으로서 봉사하는 글이 이규보 작품 세계의 본질도 아니다.
이규보와 이인로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이인로의 경우 “세상사(世上事) 중에 빈부(貧富)나 귀천(貴賤)으로 고하(高下)를 정할 수 없는 것은 오직 문장(文章)뿐이다. 대개 완성된 문장은 일월(日月-완성된 문장)이 하늘을 곱게 하고 운연(雲煙-구름과 연기, 그림이나 글씨에서 운치 있는 필점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 완성된 문장을 가리킴)이 대공(大空)에서 집산(集散)하는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이면 보지 않을 수 없고 엄폐(掩蔽)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갈포(葛布)를 입은 비천한 선비로도 넉넉히 무지개처럼 찬란한 빛(완성된 문장)을 드리울 수 있으며, 조맹(趙孟)의 귀함이야 그 세도가 나라를 부하게 하고 집안을 넉넉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있으랴만, 문장에 있어서는 칭찬할 수가 없다.
참고 자료
- 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조동일/지식산업사/1996
- 한국문학사상사시론/조동일/지식산업사/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