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리 - 평안남도
- 최초 등록일
- 2006.12.14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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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 지리 강의 시간에 30-40분정도 발표했던 자료문입니다.
A+를 맞은 레포트이며
한달간의 작업 끝에 완성 된 평안남도 부분의 모든 자료가 모여 있는
총집합체 입니다.
목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많은 자료들이 참고되어있으며
단순한 워드파일뿐아니라 사진과 신문기사가 함께 참조되어있습니다.
목차
Ⅰ. 평안남도 개관
1. 연혁
Ⅱ. 자연지리
1. 기후
2. 지세와 지질
3. 강
4. 문화유적
Ⅲ. 인문지리
1. 행정구역
2. 교육기관
3. 시설물
4. 역사적 사건
Ⅳ. 산업지리
1. 교통 (철도/도로/배)
2. 주요산업(시설)
3. 경협사업
4. 서해갑문
Ⅴ. 평안남도의 미래
본문내용
Ⅰ. 평안남도 개관
평안남도는 한반도의 북서쪽에 있는 도(道)로서 평양(平壤)을 핵으로 한 관서지방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중국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일찍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편이다. 평안남도는 1896년 평안도가 남북도로 갈라질 때 생긴 도이다. 북한에서 시가 가장 많은 도이며, 무연탄 등 대규모 탄광이 몰려(북한 전체 생산량의 55% 가량)있는 지역이다. 또한 북한의 쌀 생산량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는 평성이다. 면적은 12,383km2로 전국토의 약 5.6%, 북한면적의 10.1% 가량을 차지한다. 인구는 306.3만 명가량으로 북한 인구의 13.8%를 차지한다. 평안남도는 북한의 12개 시․도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동쪽은 함남, 남쪽은 황해도, 북쪽은 평북에 접하며, 서쪽은 황해(黃海)에 면한다. 도의 남서쪽에 북한의 정치중심지인 평양(平壤)이 있다. 동쪽 끝은 영원군 대흥군 흑수리, 서쪽 끝은 용강군 귀성면 금정리, 남단은 용강군 다미면 동전리, 북쪽 끝은 영원군 소백면 상남리이다.
1. 연혁
평양남도는 단군(檀君) 이래 위만조선(衛滿朝鮮)의 땅이었으며,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할 때 낙랑군(樂浪群)의 중심지로서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고구려가 강력해졌던 장수왕 15년(427) 서울울 국내성(國內城)에서 왕검성(王儉城)으로 옮겼으며 보장왕 27년(668) 나당(羅唐) 연합군에 멸망되기까지 고구려의 수도 지역으로서 번성하였다. 당(唐)은 고구려가 망하자 이곳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었다.
왕건이 고려 태조로 즉위하여 황폐한 평양을 부흥시키기 위해 황해도의 백성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민가를 늘리고, 대도호부를 신설하여 서경(西京)이라 했다. 고려 말엽 공민왕 때 평양부로 된 이후 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평양부라 했고, 평안도 관찰사도 있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 전국을 8도로 개편할 때 평안도․서북면(西北面)이라 했다. 고종 32년(1895)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로 나뉘었을 때 다시 평양부가 되었다. 1896년 전국을 13도로 구분할 때 평안남도가 되었으며 대한제국 광무 8년(1904) 부․군 통폐합에 따라 1부(俯) 14군으로 개편되었다.
참고 자료
○「신 북한 지리지』, 배기찬. 다나, 1994.
○ 2006 북한연감』, 연합뉴스. 2006.
○「백과전서』,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2.
○ 두산세계대백과
○ 북한의 시멘트산업」, 한국양회공업협회, 2000.
○ 연합뉴스 2005-07-20. /
○ 한겨레 2006-10-10
○ 국민일보 2006-06-26.
○ 연합뉴스 2006-06-23.
○ 국가정보원, http://www.nis.go.kr/app/board/view.
○ http://www.nkchosun.com
○ http://ww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