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12.2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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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교의 성인이라고 알려진 공자의 사상을 분석했습니다. 공자의 사상은 논어를 위주로 파악했습니다. 또한 동시대 서양의 철학사상과 공자의 사상을 비교함으로써, 공자 사상은 특질을 부각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목차
1. 공자의 생애
2. 철학으로서의 논어 탐구
3. 공자 사상의 연장 - 유학사상으로의 접근
4. 공자 사상의 현대적 의의
5. 소 감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공자는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추읍(陬邑)에서 태어났다. 공자 자신의 집안 내력은 확실하지 않지만, 60이 넘은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젊은 어머니 안징재(顔徵在) 사이에서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 어느 정도 확실하다면, 별달리 가문의 후광을 입을 처지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더욱이 늙은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공자가 젊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에, 공자는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창고지기나 가축관리 등의 천한 일을 하면서도 禮에 관심이 많았었다는 공자 자신의 기억이 몇몇 기록에 묻어서 전해질뿐이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남들에게 배우기를 즐겨했던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다고 한다.(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서른 살 무렵이면 이미 공자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의 행적을 보면 이미 열다섯에 뜻을 둔 학문이란 것이 단순히 옛 제도와 예법을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살았던 당시는 흔히들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시대적 혼란기였다. 周나라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이 떨어지고 각각의 제후국들이 난립하여 서로 패권을 쟁탈하던 어수선한 시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기를 수습하고자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었다. 이에 공자는 무력을 이용한 해결은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방안은 되지 못한다고 보고, 해결방안으로 인간본성의 회복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노나라에서 적지 않은 벼슬도 하였고, 그의 제자들도 관직에 나아가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세 대부의 집안이 나라의 기강을 뒤흔드는 현실 속에서 공자는 뜻을 펼칠 수가 없었고, 결국 55세에 노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된다. 그는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만나 仁과 禮에 입각한 자신의 사상을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후들은 공자의 고상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먼 길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공자는 현실의 벽을 절감했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13년간의 긴 여행을 정리하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참고 자료
. 공자, 김형찬 옮김, 『논어』, 홍익출판사, 1999. 8, 전체 참조.
.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재편찬위원회, 『유학사상』,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98. 1, 50-157쪽, 226-256쪽 참조.
. 고사까 슈우헤이, 방준필 옮김, 『함께 가보는 철학사 여행』, 사민서각, 1990, 19-58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