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어진의 개념 및 어원
- 최초 등록일
- 2006.12.24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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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왕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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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은 왕의 화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진영(眞影), 영자(影子), 진용(眞容), 성진(聖眞), 수용(晬容), 어용(御容), 정자(幀子), 영정(影幀), 어진(御眞),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숙종 39년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1658~1722)의 건의에 따라 여러 용어의 구별이 생기고 어진(御眞)이란 용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보게 되었다. 왕의 화상을 지칭하는 용어를 이처럼 공식적으로 논의한 것은 조선 후기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어진 제도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어진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영자(影子)’란 왕이 자신을 자칭하는 것으로서 신하로는 감히 칭할 바가 못 되며, ‘수용(晬容)’이란 선조수용이라 칭하는 것처럼 단순히 모습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도사(圖寫)시 부를 바가 못되며, ‘어용(御容)’ 역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들어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정(影幀)’은 ‘정(幀)’자의 뜻이 그림을 열어서 펼친다는 뜻으로 족자를 만든 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명칭이라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초상화를 ‘사진(寫眞)’이라고 불러 왔으며, 왕의 화상 역시 ‘어진(御眞)’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어진(御眞)’이란 용어는 왕의 화상을 뜻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서울: 열화당, 1983), pp. 147~148.
이처럼 다양한 명칭으로 국왕의 초상화를 지칭하던 것을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1658~1722)의 제안으로 어진(御眞)이란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나, 이후에도 용어를 탄력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도사(圖寫)의 경우는 ‘어용(御容)’ 또는 ‘어진(御眞)’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모사(模寫) 또는 이모(移模)의 경우는 ‘영정(影幀)’이라는 말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어진(御眞)’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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