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광해군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12.29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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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학 시간에 역사관련 책을 읽고 글을 써오란 과제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낸 레포트였습니다.
책 제목은 광해군
한명기씨가 쓰셨고 역사비평사에서 출판한 책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현재 우리나라의 정황을 광해군 시절과 많은 비교를 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광해군을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광해군이란 인물에 대해서 궁금증이 더해졌다. 물론 지금 읽은 이 한권의 책으로 ‘광해군이란 인물이 어떠하다.’라는 식의 단편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내용들은 단지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광해군이란 인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의미에서 적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어나갈 것이다.
광해군. 그가 살았던 조선시대에는 ‘왕권’이라함은 ‘모든 것을 초월하며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유일한 율법’이기 때문에 그 존재는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왕권에 대한 도전은 있을 수가 없었다. 왕권 수호라는 명분을 내걸면 그 앞에는 관습, 도덕, 설사 핏줄까지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 법칙이 우리 역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이집트에도, 로마에도, 중국에도, 일본에도…. 왕권 수호의 명분 아래 부모가 자식을, 형이 아우를, 심지어 아내가 남편을 도륙 낸 역사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는 그걸 단순한 ‘패륜’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유독 광해군 만이 ‘패륜 폭군’이라는 지탄을 받는 것일까?
먼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시기를 보면 일찍이 없던 임진왜란이라는 대 전란을 겪은 뒤였다. 조선각지가 황폐해져 있고, 민심도 흉흉했을 시절 그가 내정과 대외정책에서 남긴 치적은 결코 만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를 말하기 전에 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고 전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그는 다른 어떠한 왕보다 국왕이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란 중의 체험이 바탕이 된 그의 대외정책은 분명 탁월하고 일관성이 있었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도 사자는 그 사이에 있어야 한다.”라는 그의 지론은 주변국에 대한 끊임없는 정보탐색 노력과 맞물려 그가 펼친 대외정책의 기반이 되었다. 아마 조선시대 왕 가운데 주변국의 동향과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을 들라면 단연코 그를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뒤 전란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국가의 기반을 재건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각별했던 것 같다. 먼저 『동의보감』을 반포 한 점, 그리고 전란 중 불탄 여러 출판물들을 다시 찍어낸 점, 후금과 명나라 사이의 중립적인 외교에 힘쓴 점, 대동법의 시행 등 우리나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치적이 많았던 그였다. 특히 대동법의 시행은 고난에 허덕이는 하층 민중에 대한 지배층의 양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그가 살아있을 때의 업적은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하기에 의도적인 격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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