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의 발생배경과 전개과정 -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 최초 등록일
- 2007.01.06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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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 사화의 발생배경에 대한 이론
① 당파성론: 일제시대에 한민족의 병적인 혈연 학연 지연성과 배타성 및 당벌성이 역사현실로 반영된 것이 당쟁이라고 보았다. → 사실과 맞지 않음
② 사회경제적 발전: 훈구파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자 이에 대한 사림의 경계
③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권한 확대: 성종이 왕권강화 강화를 목적으로 많은 사림들을 언론기관(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등용하여 사림파들이 훈구파를 비판하였다.
2) 사화의 전개과정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사화의 발생배경에 대한 이론
① 당파성론: 일제시대에 한민족의 병적인 혈연 학연 지연성과 배타성 및 당벌성이 역사현실로 반영된 것이 당쟁이라고 보았다. → 사실과 맞지 않음
② 사회경제적 발전: 훈구파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자 이에 대한 사림의 경계
③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권한 확대: 성종이 왕권강화 강화를 목적으로 많은 사림들을 언론기관(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등용하여 사림파들이 훈구파를 비판하였다.
2) 사화의 전개과정
① 무오사화(연산군4, 1498): 1498년『성종실록』작성시 서문에 실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빌미.
→ 성종이 죽자 성종실록을 만드는데 이극돈(훈구파)이 성종실록의 책임자인 김일손(사림파)이 자신을 비판한 글과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보게되었다. 이에 이극돈이 화가나서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의제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세조가 단종을 죽인 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라 상소를 올려 김종직은 부관참시 (죽은 시체를 꺼내 처벌)하고
사림파는 화를 당하였다.
② 갑자사화(연산군10, 1504): 연산군을 싸고도는 척신과 일반 훈신들 사이의 반목.(廢妃尹氏賜死사건이 표면적인 구실)
→ 연산군이 흥청망청 놀다 왕실의 재정이 바닥나 훈구파의 재산을 뺏기 위하 사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성종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쿼서 이에 화가난 인수대비에게 사약을 받았던 일에 대해 연산군은 훈구파에게 왜 말리지 않았냐면 표면적으로 내세움. 이때 사림파들도 조금 당하였다. 실제로 이 사화는 사림과 훈구의 대립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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