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마고를 통해 본 프랑스 종교 전쟁
- 최초 등록일
- 2007.01.07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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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왕마고를 보고 쓴 글입니다.
독후감으로 적당하구요
여러책 참고해서 세세히 조사했습니다.
목차
영화 “여왕마고”를 통해 본 프랑스 종교전쟁
Ⅰ. 시대적 상황
1.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시기 프랑스의 왕
2. 프랑스 종교개혁 전후의 배경
Ⅱ. 영화 “여왕마고”
1. 영화 “여왕마고”의 이야기 전개
2. 영화“여왕마고”의 극적요소
Ⅲ. 영화“여왕마고”를 본 나의 소감
본문내용
1.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시기 프랑스의 왕
프랑스와 1세(1515~1547)
앙리2세(1547~1559) ─ 까트린느(왕비)
프랑스와2세(1559~1560)
샤를르9세(1560~1574) ─ 까트린느 섭정기, 마고의 결혼,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1572)
앙리 3세(1574~1589)
--------------------------------┘ 발로아 왕가
부르봉 왕가의 앙리4세(1589~1610)─낭트칙령(1589)
2. 프랑스 종교개혁 전후의 배경
마상시합의 사고로 인한 앙리2세(1547~1559)의 죽음은 프랑스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둘싼 합스부르크가와의 왕조전쟁은 끝나고 새로이 종교적인 내란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내의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은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들어 온 것으로서 여기에 대해 역대 왕들은 대체로 탄압하였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특히 칼뱅파는 프랑스내의 도시민․부농 및 귀족층에 전파되어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하여 앙리2세가 죽은 직후부터 파리에서 칼뱅파의 전국조직이 결성되고 곧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3당파가 주도권을 경쟁하고 있었다. 첫째는 발로아 왕조가 단절되면 왕위를 계승할 왕족으로 위그노파를 포섭하고 있는 부르봉가이고 둘째는 로렌의 왕족으로 카톨릭을 대표하는 기즈가이고 셋째는 왕조에 충실하며 기스가와 대립하는 몽모라시가였다. 몽모라시가에서 대표할 만한 인물은 꼴리니 제독이다. 16세기 프랑스는 카톨릭을 믿는 프랑스와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을 국교로 하는 나바르로 양분되어 카톨릭군은 기즈남작이 이끌고 개신군은 꼴리니 제독이 이끌어왔다.
앙리2세의 뒤를 이은 프랑수아2세(1559~1560)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정권은 기즈(Guise)가에 의해 좌우되었다. 프랑수아2세의 뒤를 이어 그의 동생 샤를르9세(1560~1574)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샤를르9세는 미성년자였기에 왕의 모후인 까트린느는 섭정으로서 실권을 장악했다.
카트린느의 섭정기는 종교적․정치적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였다. 그래서 까트린느는 극단적으로 대립한 카톨릭과 개신교간의 싸움을 이용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왕위를 차지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카트린느의 첫 조치는 당시 위그노(Huguenots)라고 알려진 프랑스 내의 프로테스탄트에게 비록 제한된 범위 안에서였으나, 종교적 자유를 부여하는 칙령을 공포한 것이었다.
참고 자료
앙드레 모로아, {프랑스사}신용석 편,(弘盛社,1980)
김진웅․손영호․정성화,{서양사의 이해},(학지사,1994)
프레데리크 들루슈 편,{새유럽의 역사}윤승준 역,(까치,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