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기행문]법주사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7.01.26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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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재와 문화유적 수업을 수강할때 제출하였던 레포트입니다.
실제로 제가 법주사를 다녀와서 쓴 것입니다.
목차
1.법주사를 찾아가며
2.법주사를 살피며
3.법주사를 나오며
본문내용
1. 법주사를 찾아가며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기억에 한계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기억을 잊고 고통에서 벗어나 살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물론 일반적으로 나쁜 기억일 경우가 더 많지만, 뇌리에 박혀 절대 잊혀지지 않고 평생 가는 것들이 있다. 다행히도 나같은 경우에는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에서 좋은 기억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이러한 기억 중 하나가 속리산으로 가는 굽이 길이다. 나는 아주 가끔 산이 높고 험해 굽이진 이름 모를 길을 갈 때마다 법주사로 가는 이 굽이 길을 떠올린다. 아주 멋지다거나 환상적이진 않지만 묘한 매력으로 뇌리에 박힌 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길. 항상 다시 튀어나와 무언지 모를 회상을 떠올리게 하는 그 굽이 길을 오늘은 실제로 오른다. 심하게 굴곡진 길을 버스는 쉬지 않고 기운차게 올라간다. 오랜만에 찾은 속리산에서 옛 기억과 각인된 몇 가지 장면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진다. 서럽고 슬픈 인생을 살아 온 사람이어서 온통 가슴 아픈 기억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어디든 여행을 가야한다. 기쁘고 아름다운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이 제일 높은 개인적인 실천이 바로 여행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청주시내에서 보은,대전 방면으로, 공군사관학교를 지나 꽤 험한 산길을 가다보니 보은에 채 못 미쳐 속리산 방향입구가 나왔다. 대관령에 필적하는 말티고개를 더 넘어 상가촌을 지나서 속리산 매표소가 나타났고, 대학생들은 학생증을 가지고 가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입구를 지나 양 옆으로 길게 뻗은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다 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중원지방 최대의 사찰이라고 불리는 법주사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법주사의 연혁에 대해 잠시 살펴보면, 신라 진흥왕(539 ~ 575) 14년(553년)에 천축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의신조사에 의해서 창건되었는데, 불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가람이란 뜻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험준한 이곳이 속세를 떠나 불법의 진리를 펼 곳이라고 여겼다고 했다.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중건했는데 지금 남아있는 문화재는 모두 이때 조성한 것이다. 그후 혜공왕 12년(776년)에는 진표율사가 중건, 고려태조 1년(918년)에는 증통국사가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626년(인조4년)에 벽암대사가 옛건물을 모방하여 복원하였다. 1891년 고종 28년에는 탄응선사가 머물면서 15년간 걸쳐 중수하여 오늘날과 같은 법주사의 면모를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법주사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관광지이다. 사람이 북적거리고 바가지가 심할 경우가 많아 유명관광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명관광지라서 좋은 점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숙박, 식사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보다 편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