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학과 그의 작가세계-요한시집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7.02.03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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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작가론- 기말레포트입니다
출석40에 레포트 60인 수업이었는데 이 레포트 하나로 A+ 받았어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장용학의 소설은 정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글들로 ‘관념적’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글들이다. 소설이 아니라 마치 철학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분명히 두 번째 읽는 것들인데도 대사가 있던 장면들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생소해서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좋게 보면 소설적 형식의 틀을 깨는 소설의 탄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소설의 형식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글을 썼다고도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소설의 형태는 갖고 있으나 단지 작가의 철학세계가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번역되어 직접 쓰이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 담기 힘든 소설이 된 것 같다. ‘소설적 형상화’니 ‘관념적’이니를 떠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 수준이 높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소설로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주고 싶지 않다. 굳이 「요한시집」을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면 ‘토끼 우화 부분’ 정도만 골라서 좀 다듬은 다음에 수준 높은 동화를 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이 작가에 대해서 쓰고 싶고 더 생각해 보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것은 작가의 깊은 사유다. 물론 각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생각처럼 포장되어 나오고 있지만, 몇 개의 소설을 읽어보면서 나는 그것이 마치 작가의 목소리 인 듯이 느꼈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들도 몇 개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번 발표문과는 달리 그의 생각에 대해서 나도 깊이 생각을 해 보고 그 생각의 결과물들을 쓰는 방향으로 가 볼까 한다.
작가는 고정관념을 깨려는 것처럼 보이는 의문들을 많이 가진다. 이는 내 추측에 아마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많은 책에서 작가는 전후세대를 살았으므로 실존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러한 소설이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전후세대이기 때문에 존재에 대한 사유가 좀 더 깊어졌을 뿐이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듯하다. 인간이란 정말로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만일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죽어야 하는가? 살아야 하는 삶에 이유란 있는 것일까? 이유가 있어서 살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삶을 구속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유가 없다면 죽어야 하나? 그렇다면 죽는 것은 정말로 자유에 이르는 길이 되는 것일까?
참고 자료
장용학 『요한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