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운 최치원의 문학과 사상이란 주제의 소논문 형식의 글입니다. 작가론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최치원의 생애나 시대상황을 고찰하고, 한시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그의 사상과 문학사적 의의등을 살펴본 것입니다. 삼국사기 등 되도록 원문을 인용하고자 하였고, 한시의 원문도 모두 표기하였습니다. 고전작가 관련 리포트 작성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남북국시대 최치원의 생애와 입장
2) 孤雲의 문학
(1) 漢詩 작품
(2) 산문, 그 밖의 저술
3)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
3. 결론
본문내용
최치원은 신라 말기(857년, 헌강왕 원년)에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정민(精敏)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다고 하며 12세때는 아버지에 의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때 아버지가 치원에게 당부했던 말은 『三國史記』와 최치원의 『桂苑筆耕集』序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6두품 세력의 위치와 입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나이 12세가 되어 장차 바다배를 타고 당나라에 들어가 공부를 하려 할 때 그 아버지가 말하기를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及第)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니 힘써 공부하라”하였다.
열두 살 때 집을 떠나 서쪽(중국)으로 향해 배를 타려고 할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네가 십년 공부하여 進士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 하지 말아라. 나도 아들 두었다고 하지 않겠다. 그곳에 가서 부지런히 공부에 힘을 다하여라” 하고 훈계하셨으므로……
이처럼 그의 아버지가 12세에 불과한 어린 아들에게 부자(夫子)의 관계를 끊을 것을 각오하고라도 유학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바로 6두품 계층의 사회적 한계를 인식하고 직접 현실의 높은 벽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골품제(骨品制)하에서의 6두품세력은 당시 신라사회에서 자신들의 뜻을 펼치기에는 많은 제한이 따르고 있었으므로 발달된 당(唐)에서 학문을 배우고 돌아오는 것이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며 최치원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뒤에서 살펴볼 최치원의 문학과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당, 발해, 신라 사이에서의 동아시아 정세와 골품제의 모순을 비롯한 신라 말의 혼란 속에서의 구조적 모순 해결을 위한 지식인의 자각이라는 측면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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