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7.03.03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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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비교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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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요약한 것인데, 주의해야 할 점은, 단순히 분량을 요약하여 줄인 것이 아니라, 요약 과정에서 내용과 체제, 인식등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내용면에서 엄연한 차이를 지니며, 오히려 고려사에 없는 많은 부분이 고려사절요에서 보충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들을 중심으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비교해 보면,
우선, 고려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2대 정사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조 초기 사대부의 전 왕조 고려에 대한 이해를 정리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사는 춘추관에서 30여명의 사관이 모여 분찬한 관찬사서로써, 기전체로 쓰여져 있다. 한편, 고려사절요는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던 김종서 등이 기전체 형식의 고려사가 열람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편년체 형식의 고려사 개편을 건의하고 6개월만에 고려사절요를 완성하였다. 원래 고려사를 편찬할 때, 세종은 군주와 왕실의 기사를 자세히 기록할 수 있는 편년체 사서를 원했으나, 신료들은 열전이 중심이 되는 기전체를 옹호했었다. 이에 신료들은 세자를 설득시켜 사서가 결국 기전체로 쓰여지었으나, 세종의 주관이 반영되었다. 이후 고려사가 완성되고 신하들은 고려사의 미진한 바를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서둘렀고 결국 고려사 사론보다 증가된 108칙의 사론을 통해 왕보다는 신하의 입장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참고 자료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나온 모든 역사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