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모스크바3상회의와 신탁통치
- 최초 등록일
- 2007.03.22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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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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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이해
2. 왜 잘못 이해하였을까
3. 역사적 진실은 무엇인가
4. 신탁통치 왜곡 보도에 대한 각 세력들의 반응
5. 반탁운동을 한‘진짜’이유는
본문내용
1.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이해
전후 한국문제 처리를 위해 열린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내용은 동아일보가 원래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오보를 함으로써 신탁통치에 관한 내용으로만 국한되었다. 또한 그 주장에 대해서도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이며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고 실제 사실과는 정반대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은 소련의 침략정책을 구체화 한 것으로 신탁통치안은 재 식민지화와 다름없고, 조공은 소련의 지시를 받아 하루아침 사이에 반탁에서 찬탁으로 변하였다는 내용들이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이로써 반탁은 애국이고 반소․반공이며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찬탁은 매국적 행위로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지시를 받아 민족분열을 분열시키려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2. 왜 잘못 이해하였을까
12월 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나 소련은 남북을 일괄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정반대의 오보가 미 합동통신사에 의해 지급으로 전송되었다. 국민들은 신탁통치는 독립과 배치되는 것이라 여겼고, 이러한 대중의 반탁감정은 반소감정과 연결이 되었다.
12월 28일에 모스크바 결정 중 5년간의 신탁통치만을 부각시킨 왜곡보도가 국내에 전해지자 신탁통치는 모스크바 결정에 나타난 바 대로인 ‘독립을 위한 방책’이 아니라 독립을 유보시키는 조치로 해석되어 대중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이후 반탁정국은 1941년이래 반탁의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온 김구의 임정세력이 우익의 선두에 서서 일방적으로 주도하였다. 이들은 “제 2의 독립운동”이라고 명명하면서 미군정과 정면대결 하여 즉시 독립을 요구하였다. 반면 1946년 1월 2일 조공은 반탁에서 모스크바 결정지지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