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치파오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7.04.21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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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치파오에 대해 조사한 파워포인트
치파오의 원류
치파오의 전설
현대적으로 변한 치파오
목차
치파오란?
-치파오의 원류
-치파오의 전설
-치파오 현대적 변화
본문내용
청대(淸代)에 형성된 중국의 전통의상이다. 원래 남녀 의상 모두를 이르는 말이지만, 보통 원피스 형태의 여성 의복을 지칭한다. 몸에 딱 맞는 형태의 옷이며, 치마에 옆트임을 주어 실용성과 여성미를 강조하였다. 옷깃은 흔히 차이니즈칼라라고 불리는 스탠드칼라이며, 치마와 소매의 길이도 다양하다. 면으로 만든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비단에 여러 가지 자수를 놓아 화려하게 만든 것까지 다양하다.
치파오는 고대 ‘파오복`의 일종으로 기원은
멀리 춘추전국시기의 심의(深衣)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의 전통의상은 ‘심의(深衣)’라 불렀는데
춘추전국 시대부터 한대(漢代)까지의
사람들이 즐겨 입었다고 한다.
심의는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대(漢代)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던 옷이다.
후세의 파오(袍: 중국식의 긴 옷)는
아마도 이 심의와 어느 정도 연원관계가 있는 듯하다.
사실 심의는 파오와는 다소 다르다.
심의는 투피스 형식으로 상의와 치마를
하나로 연결한 듯한 효과를 나타내고,
파오는 원피스 형식으로 상의와
치마의 구분이 전혀 없다.
후에 파오는 점진적으로 안정된
복식 스타일로 정착되어 발전하였다.
소수민족이나 유목민족 지구에서 유행한 파오는 일반적으로 말 타기
활쏘기 등 격렬한 활동을 하기에 편리하도록 몸에 꽉 끼는 것이었다. 이
러한 파오는 대체로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고 소매가 좁으며 품이 몸에
맞았다. 역사적으로 한족들도 이렇게 몸에 꽉 끼는 스타일의 파오를 여
러 차례 수용한 적이 있었다. 조(趙)의 무령왕(武靈王)이 추진한 호복
(胡服: 북방 유목민족 복장) 차림의 말 타기와 활쏘기가 비교적 전형적
인 사례
이다.
당대(唐代)에도 호복은 일시에 유행하였는데, 개원(開元: 713~741) 천
보(天寶: 742~755) 연간에 호복은 호장(胡粧: 유목민족 치장), 호기(胡
騎: 유목민족의 말타기), 호악(胡樂: 유목민족의 음악)과 함께 당시 사
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遼) 금(金) 원(元)과 청(淸) 왕조 등 소수
민족 정권의 통치시기에 몸에 꽉 끼는 파오는 복식의 주류를 형성하였
다. 청대는 통치 시기가 가장 길면서도 안정되었기 때문에 파오는 전형
적인 복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