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동양사(선양혁명,갑골문,변법)
- 최초 등록일
- 2007.04.26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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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에 대한 내용중 선양 혁명, 갑골문, 변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어렵게 찾은 내용입니다.
목차
선양 혁명
갑골문
변법
본문내용
선양혁명
유가(儒家)에서 전승한 고대사에 의하면, 제요(帝堯)는 민간의 효자 순(舜)을 사위로 삼고, 불초한 아들인 단주(丹朱)를 제쳐 놓고 유덕(有德)하며 천명(天命)을 받아야 할 순에게 자발적으로 양위(讓位)하였다. 제순(帝舜)도 마찬가지로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었으나, 우의 아들 계(啓)는 하왕조(夏王朝)를 세습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걸(桀)에 이르자, 탕(湯)은 무도한 군주인 그를 무력으로 방벌(放伐)하여 은왕조(殷王朝)를 일으켰다. 은의 주왕(紂王)도 역시 폭군이어서 주(周)의 무왕(武王)은 아버지인 문왕(文王)의 업(業)을 이어 은을 멸망시키는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라 하였다.
맹자(孟子)는 탕무(湯武)의 무력혁명인 방벌과 요순(堯舜)의 선양을 시인하였다. 그후 역사상의 혁명은 야심과 실력으로 수행되었으나, 한족(漢族) 또는 한화(漢化)한 북적(北狄)간의 왕조교체는 선양의 형식으로 위(魏)의 조비(曹丕)에서 송(宋)의 태조(太祖)까지 중세에 10여 회 행하여졌다. 선양의 관념은 멀리는 왕망(王莽)의 찬탈에 있었고, 가까이는 청(淸)의 선통제(宣統帝) 퇴위조(退位詔)인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말에도 있다. 번거로운 의식(儀式)과 신비적인 이론의 뒷받침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송 이후의 종족간의 흥망과는 달리 민중까지 휘말리는 대규모 유혈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무혈혁명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선양이란 본래 상고 시대에 임금이었던 이들(요, 우... 이런애들)이 자신의 친족을 세워 왕통을 잇게한 것이 아니라 덕이 있어서 백성들에게 신망 있는 이를 자신의 후계로 세워 정치적인 수업을 시킨 후 왕위를 넘겨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혈연 중심의 왕조가 성립된 이후로 거의 이러한 일은 없었는데 전한과 후한 사이에 있던 신이라는 왕조를 세운 왕망이 이를 찬역의 도구로서 사용한 이후로 위의 조조, 동진의 유유, 유송의 소도성, 남제의 소연 등.... 다수의 권력자들이 자신이 제위에 오르는 수단으로 무혈혁명을 원하였기에 이런 허울 좋은 선양이란 명목으로서 황위를 찬탈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