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
- 최초 등록일
- 2007.04.27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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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견훤에 대한 인물조사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견훤의 생애
Ⅲ. 견훤의 호족정책
Ⅳ. 견훤과 후백제의 멸망
Ⅴ. 나오며
본문내용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甄萱)의 일반적인 평가나 인식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가장 이상적이고 훌륭한 군주의 상으로 군주의 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에 궁예와 더불어 포악하거나 무능한 인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비슷한 역사의식을 볼 수 있다.
신라는 운수가 다하고 도를 잃어 하늘이 돕는 바가 없고 백성이 돌아갈 바가 없었다. 이에 뭇 도적이 틈을 타서 일어나기를 마치 고슴도치 털 같았다. 그 중에 심한 자가 궁예와 견훤 두 사람이었다. 궁예는 본디 신라의 왕자로서 도리어 종국(宗國)을 원수로 삼아 섬멸하고자 하여 선조의 화상을 칼로 베기까지 하였으니 그 어질지 못함이 심하였다. 견훤은 신라의 백성 출신으로서 신라의 관록을 먹으면서 반역의 마음을 품어[包藏禍心] 나라의 위태로움을 다행으로 여겨 수도를 쳐들어가 임금과 신하를 도륙하기를 마치 새잡듯, 풀베듯하였으니 실로 천하에서 가장 흉악한 자[元惡大]이었다. 그러므로 궁예는 자기의 신하에게 버림을 받았고, 견훤은 자기 자식에게서 재앙을 받았으니 이는 스스로 취한 것이니 누구를 탓하리오? 비록 항우와 이밀(李密)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일어남을 대적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궁예와 견훤의 흉악한 사람이 어찌 우리 태조와 서로 겨룰 수 있겠는가? [이들은] 단지 [태조에게] 백성을 몰아다주는 일을 한 사람들[歐民者]이었다(『삼국사기』, 권50, 열전 제10)
참고 자료
● 이도학, 『진훤이라 불러다오』, 푸른역사, 1998
● 김부식, 『삼국사기』, 김종권역, 대양서적, 1973
● 정청주, 「견훤의 호족정책」, 『전남사학』Vol.19, 전남사학회, 2002
● 김갑동, 「후백제의 멸망과 견훤」, 『한국사학보』Vol.12 , 고려사학회, 2002
●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편, 『한국 인물 대사전』, 중앙일보,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