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농지개혁과 북한의 토지개혁
- 최초 등록일
- 2007.05.04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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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한의 농지개혁에 대한 평가와 북한의 토지개혁 비교한 글 입니다.
목차
-목 차-
1.농지개혁이란?
2.농지개혁을 둘러싼 신화와 그에 대한 반박들
1) 이승만은 농지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2) 농지개혁은 한국전쟁 이전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3) 농지개혁은 영세농의 생활고를 다시 증가 시켰고, 대 자본가들의 농촌출신 노동력의 수탈의 시발점이었다.
4) 지가상환곡의 부담이 너무 컸다.
5) 기타 주장들
① 남한의 농지개혁은 분배의 내옹과 주체에 있어서 불완전 하다.
② 농지개혁은 이승만 정권의 자발적인 시도가 아니다.
③ 1950년 5.30선거에서 이승만과 무소속에 비해 민주국민당은 크게 패했다.
④ 농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은 전쟁 전부터 이미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3. 북한의 토지개혁 비교
4.결론
본문내용
4.결론
해방 후 전체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던 남, 북한 사회에서 이루어진 농지, 토지 개혁은 한국전쟁과 함께 해방 후 50년대까지의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80년 때 까지 우리의 농지개혁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으로 보고 북한의 그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학계의 대세였으나, 공산권의 붕괴와 더불어 북한 체제의 실패, 우리 경제의 눈부신 발전으로 농지개혁에 대한 재평가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적으로 농지개혁의 성과가 지금의 우리 경제를 이룩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나, 과거의 지주계급이 지금의 자본가 계급으로 굳어지고, 우리의 농촌이 지금도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 즉 땅은 인가에게 있어서 거주와 식량 생산 등의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과거의 토지는 주거의 개념보다는 생산수단의 목적으로 우리에게 간절하였으나, 지금은 ‘집’ 즉 주거 공간으로서 더욱 간절하다. 전국토의 80%이상을 상위 5%의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았을 때 과거 농지개혁이 이루어지기 전 불안정 했던 우리사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