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시가
- 최초 등록일
- 2007.05.14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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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강정철,고산 윤선도,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전라도 관련자료 포함, 사진포함
목차
1)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
(1) 송강 정철의 생애
(2) 관동별곡
(3) 사미인곡
2)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 윤선도의 생애
(2) 어부사시사
3)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 송순
(2) 면앙정가
☆ 참고 (전라남도 관련) ☆
본문내용
(1) 송강 정철의 생애
松江은 조선중기의 문신, 문학가로서 1536년 12월 서울 장의동에서 부친 정유침과 모친 죽산 안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큰누나가 인종의 귀인이었고 작은 누나가 계림군의 부인으로 어려서부터 동궁에 출입하면서 동갑인 명종과 친하게 되었다.
10세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 매형이 피살되고 아버지가 유배되는 등 가계가 몰락한다. 이런 환경 때문에 유년 취학이 어려워 16세가 돼서야 공부를 시작했는데 부친이 석방돼 담양 창평으로 내려오면서 부터였다.16년이나 공부를 못한 송강은 여기서 10년간 임억령, 김인후, 기대승 등에게 수학하여 생애 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창평에서 수련기를 거친 송강은 1561년 26세 때 진사시에 일등하고 이듬해 문과 별과에 장원,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첫 관직은 성균관 전적이었고 이어서 경기도사(30세), 이조정랑(33세), 홍문관 전한(38세), 좌의정에 오르면서 파란만장의 쓰라린 고역을 겪게 되고 기구한 세월을 지내게 된다. 이런 벼슬을 지내는 동안 동서분쟁은 날로 격화되었는데 송강은 서인파의 거두가 되어 동인세력과 맞붙어 여러 번 파직, 유배를 당한다. 45세 때인 1580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 훈민가 16수, 최초의 가사 관동별곡 등을 지었고, 1581년 노수신에 대한 응지를 지은 것이 화근이 되어 관직에서 물러나 창평에 돌아왔다.
4년 후 松江은 예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치면서 큰아들 기명이 요절하자 고향에 가 있었는데 10월에 정여립이 모반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달려와 선조에게 비밀로 차자를 올렸다. 선조는 이와같은 위기에 일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고 행동한 정철을 충절이라 칭찬하고 우의정을 제수해 정여립 모반의 주모자 최영경을 옥에 가두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