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언어와 인간 - 언어와 문자 , 우리나라 글
- 최초 등록일
- 2007.06.03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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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 글의 역사를 알아보고 훈민정음의 창제와 발전과정,
한글의 특징과 한글사용의 의의를 알아본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우리 선조들이 처음 문자와 접하게 된 것이 기원전 109년 중국의 무제가 고조선을 정복했을 때라 한다. 이때 한자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고 언어표기 생활을 한자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한자는 공식문자였으며 그 지역의 유일한 문자 형태였기 때문이다. 한자는 고립어인 중국어 표기에 알맞은 형태였고 첨가어인 우리나라 말의 표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형태였다. 때문에 우리말 표기에 알맞은 형태의 문자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고 그러한 시도의 결과로 한자를 빌려서 국어를 표기하는 한자 차용 표기법의 형태가 나타났다. 한자를 바탕으로 음절문자를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는 690년 신라 신문왕 때에 한 궁정학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표의문자인 한자로부터 음절문자의 기호를 구별해내기는 쉬운 것이 아니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음절기호가 첨가되었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부적절한 것이 되었다.
한자도입 초기에는 한자를 그대로 썼지만 한문과 국어간의 음운, 어휘, 문법, 등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한자를 국어에 맞게 표현하기 위한 시도로 한자의 음가를 차용하는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를 표현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이후에는 음과 훈을 차용하여 표기하기도 했다. 고유명사만 표기하던 단계에서 한 발짝 나아가서 한자의 훈을 국어의 어순대로 나열하는 서기체의 형태가 나타났다. 이것은 한자의 뜻을 알면 해석하는 것은 쉬웠으나 우리말의 문법적 요소를 표현하는 형태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한 문장의 형태를 띠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 이두이다. 이두식 표기는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표기방식으로 한자의 음과 뜻을 함께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했다는 특이점이 있다. 이두는 서기체의 단점이었던 문법적인 문제를, 적당한 형태소를 문장사이에 삽입함으로써 문맥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음차와 훈차를 함께 이용했다.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훈차 자를 사용했고 형식적인 것들(문법요소)을 표현할 때 음차자로 표기했다. 국어의 단어를 같은 뜻을 갖는 한자로 나열하고 조사, 어미 등을 표기하는 문법적 형태소를 나타냄으로써 보다 매끄러운 문맥을 이루고 보다 정확한 문자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두와 유사하나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향찰이 있다. 향찰은 한자의 음과 훈으로 완전한 국어를 표기했던 것으로 차자 표기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이두를 문어체(보조적 표기수단)라고 한다면 향찰은 구어체(전체계적 표기수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국어의 형태소까지 한자의 음과 훈을 차용하여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향찰표기는 음절구조가 복잡하여 한자를 차용하는데 한계가 있는 우리 국어의 특성과 동음이의자가 상당히 다양한 한자의 특성 때문에 표기상의 통일을 가져오기 어렵다는 한계점으로 고려 초기 이후 쇠퇴기에 들었다. 향찰이 한자어를 혼용한 언문일치체라고 한다면 이두는 한문을 혼용한 국한문혼용체라고 할 수 있다.
부적절한 것이 되었다.
참고 자료
문자의 역사 앨버틴 가우어 지음 / 강동일 옮김 <새날>
디지털시대의 언어문화 김형주, 김병홍 엮음 <동아대학교 출판부>
언어의 모습 김혜숙 편 <월인>
: 그 표현과 이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