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삼국유사]일연과 삼국유사(일연, 일연 생애, 일연 시대적 배경, 역사 재구성을 위한 설화와 신앙, 삼국유사, 삼국유사 편찬경위, 삼국유사의 체제,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 삼국유사, 역사서술, 역사의식)
- 최초 등록일
- 2007.06.11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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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연의 생애, 일연의 시대적 배경, 삼국유사의 편찬경위,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에 관한 분석
목차
Ⅰ. 일연
1. 일연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2. 역사 재구성을 위한 설화와 신앙
Ⅱ. 삼국유사
1. 편찬경위
2. 삼국유사의 체제
3.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
Ⅲ. 마치며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일연(1206-1289)이 살았던 13세기는 내우외환이 중첩된 고난의 시기였다. 안으로 무인들의 집권과 전횡에 반항하는 농민과 천민들의 반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씨정권의 독재가 계속되었고, 밖으로는 몽고의 침략으로 인해 전국토가 전란의 흙먼지로 뒤덮였다. 당시 민중들은 몽고의 침략세력과 국내의 지배권력에 대한 이중의 항전을 전개해야 했다. 원종11년(1270)에 몽고와의 강화가 이루어져 안으로는 무인정권이 끝나고 몽고와의 전쟁이 일단락되었으나, 이어진 몽고의 간섭 및 일본원정에 따른 경제적?군사적 부담은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한 고려사회에 설상가상의 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수난을 겪는 동안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집단의식이 강화되고 있었고, 민족의 자주적인 전통의식을 통해 현실의 수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역사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 들어 고려시대의 신앙 및 사상의 세계를 지배한 강력한 세력인 불교 또한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무신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선종의 움직임은 문신귀족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교종을 대신하여 불교계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지눌로부터 혜심 등으로 이어지는 무신란 이후의 보조선(普照禪)은 국난을 타개하려는 국민의식 속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연은 이 격동의 한 세기를 관통하여 선사(禪師)로서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생애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로 경북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 전하는 비문을 들 수 있거니와, 이를 바탕으로 삼아서 그의 생애의 대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사의 이름은 견명(見明)이고 자(字)는 회연(晦然)으로, 뒤에 이름을 일연으로 바꾸었다. 그는 1206(희종2년)에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산)에서 뒷날 좌복사(左僕射)를 추증받은 김언필(金彦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어머니는 이씨로서, 해가 집안에 들어와 배를 비추는 꿈을 꾸고서 일연을 임신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행동거지가 단엄(端嚴)하였는데, 소걸음에 호랑이눈이었다고 한다. 일찍 속세를 벗어날 뜻을 품어 9세(1214)에 출가하여 해양(海陽; 전라도 광주) 무량사에 가서 공부하였으며, 14세(1219)에 설악산 진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