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분벽화
- 최초 등록일
- 2007.06.14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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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구려 문화개관
2. 고구려 예술
3. 고구려 고분벽화
(1) 초기 (약 350 ~ 약 450년)
① 동수묘(冬壽墓) -안악 3호분
② 덕흥리 고분벽화
(2) 중기 (약 450 ~ 약 550년)
① 쌍영총(雙楹塚)
② 무용총(舞踊塚)
(3) 후기 (약 550년 ~ 668년)
① 집안(통구)사신총(通溝四神塚)
느낀점
본문내용
1. 고구려 문화개관
고구려는 기원전 졸본의 작은 땅으로부터 시작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영토를 장악한 강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고구려는 성립 초기부터 주변의 다양한 종족들을 아우르며 성장하였고, 북방과 중국의 민족들과 교류하며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 그 영역과 힘을 확장하였다. 고구려가 존속되던 시기인 700여년의 역사 동안 중국에서는 전한(前漢)에서 당(唐)에 이르는 8개 왕조가 바뀌며 등장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고구려의 웅혼한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높이 6.4m의 거대한 자연석에 1,775자의 한자를 새겨놓은 광개토대왕비, 중국인들조차도 `동방의 금자탑`이라 부르는 장군총, 지금은 돌무더기로 변했지만 장군총의 네 배 크기에 이르는 태왕릉과 천추무덤 등의 적석총에서 보여 지는 거대한 규모, 고분의 건축과 벽화를 통해 보여 지는 과학성과 예술성은, 오랜 역사 동안 중국의 변화를 지켜보고 북방과 중국의 민족을 조절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던 고구려인의 기상과 자신감이 담겨 있다.
또한, 고구려의 문화에서는 한 국가의 말기에 나타나는 문화의 퇴폐성을 찾아볼 수 없다. 고구려 말기의 건축 양식이나 그림 양식 등을 통해 보여 지는 화려함은 퇴폐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힘과 웅혼한 기상을 담은 화려함이다. 멸망한 국가인 고구려의 문화에서 건강함만이 남아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고구려의 역사적 배경으로, 중국 및 북방의 민족들과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고구려인의 문화에는 일정 정도의 긴장감과 강인한 기상이 항상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려의 멸망이 노쇠한 국가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군사적, 문화적으로 강대한 국력을 유지하던 상태에서 대 수, 당 전쟁을 통해 급격하게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598년 수 문제의 침입 이래 이루어진 수나라와의 네 차례 전쟁과 645년 당 태종의 침입 이후의 여섯 차례 등 고구려는 70년 사이에 10차례의 큰 전쟁 속에서 급작스레 붕괴된 것이다.
고구려의 붕괴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사에 커다란 손실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문화의 상당 부분이 발해와 신라, 고려를 거치며 우리민족의 문화 속에 흡수되어 내려왔다는 점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정신 문화 연구원, 1991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사계절출판사, 2000
김원용, 안휘준, 《한국 미술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3
《동아원색 세계 백과사전》, 동아출판사, 1991
KBS 역사스페셜,《역사스페셜 4(평양성 난공불락의 비밀)》,〈고구려 고분 벽화, 무엇을 그렸나〉, 효형출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