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영화 `300`을 보고나서
- 최초 등록일
- 2007.06.20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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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300을 보고나서의 감상과
나의 시각에서 재해석 해보고,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기를 중심으로 적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300』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군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전쟁이 있었던 테르모필레 지역에서의 전쟁, 살라미스해전의 시발점이 되는「테르모필레 전쟁」을 배경으로 그린 영화이다. 그리하여 ‘뜨거운 통로(門)’라는 의미를 가진 ‘테르모필레’, 이곳은 해안선을 따라 천연의 요새로 쓸 수 있는 곳으로 영화가 상영되면서 다시금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어쩌면 역사 속 신화로만 남게 될 지도 모르는 전투를 제작자는 스파르타의 용맹함을 충분히 묘사하며 당시 그들의 전사로써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사실적이고도 극적으로 소화해 내며 관람객들을 감동시킨다. 이제 그럼, 영화의 찬사를 뒤로하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과 그 영화에 대한 나의 시각으로 재해석 해보려 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때까지 전쟁을 이루었던 군대의 규모 중 가장 큰 규모라 기록하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는 선대의 소망을 이어 그리스 정복이라는 꿈을 키우며 3년간 군대를 정집하며 군사력을 키워나간다. 그러한 3년간의 준비는 크세르크세스의 육군과 해군을 합친 병력이 264만 1610명, 약 270만명에 이른다고 기록되고 있다. 실제 이 전쟁에서 그리스연합군은 이러한 페르시아 군에 대항하여 스파르타 군사 300, 그리스의 동맹국인 테스피아군 약 700, 테베군 약 300으로 1300명이 테르모필레를 사수했다. 그러나, 테베군은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의 무모함을 깨닫고 두려움에 페르시아에 항복하고 뒤이어 동맹국이었던 그리스연합군을 페르시아군과 합작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두 차례에 걸친 마라톤 전투를 치른 아테네의 역사적 사실은, 간접적으로나마 페르시아의 힘은 그리스 폴리스 전체가 실감하였고, 페르시아의 뒤이은 침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전쟁 발발 3년 전부터 해군력을 증강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투자로 BC 480년에는 약 2백여척을 거느린 그리스 전 지역을 통틀어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지상군은 그리스 지상병력으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그리스연합군의 불리한 상황은 전쟁에서의 패배를 맛보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칼이 없으면 맨 주먹으로 싸운 레오니다스왕과 용감한 병사들은 스파르타 특유의 전술, 훈련, 장비, 용기 등을 상징하는 전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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