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광주민중항쟁
- 최초 등록일
- 2007.06.22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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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주민중항쟁은 현대 한국 사회변혁운동사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전진한 민중의 승리이자, 운동역량 강화를 위한 조직의 건설과 사상 이론의 과학화라는 민족민주운동의 과제를 인식시켜준 투쟁이다. 본문에서 광주민중항쟁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그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광주민주화항쟁의 발생 배경
1. 1970년대 유신체제의 정치ㆍ경제적 성격
2. 1979~1980년대 투쟁
Ⅲ. 전개과정
1. 비무장 민중항쟁의 시기
2. 민중의 무장항쟁의 시기
Ⅳ. 광주민중항쟁의 성격과 의의
Ⅴ. 나가는 말
본문내용
5월 22일~25일은 시민군이 도청과 광주 전역을 장악한 후 일반수습대책위원회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가 항쟁을 지도하였던 시기이다. 이들 양수습대책위원회는 투항파적 경향을 강하게 띠면서 무기 반납에 의한 사후 보장만을 사태 해결책으로 주장하였다. 이들은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시민들의 비난을 받았고, 결국 26일 새로운 항쟁 지도부가 이들을 대체하게 되었다. 5월 22일 도청이 시민군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새로운 광주의 건설을 위한 의욕에 가득차게 하였다. 도청에서는 정시채 부지사, 목사, 신부, 변호사, 관료, 기업주 등을 중심으로 한 수습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학생수습대책위원회도 결성되었는데 일반수습대책위원회는 군측과 협상,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중점을 두고 학생수습대책위원회는 대민업무에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수습대책위원회는 계엄군측과 협상을 하였다. 그러나 협상내용은 유보적이며 미온적이었다. 이들은 시민들이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무기를 회수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무기를 회수하였다. 학생수습대책위원회도 정규군인 계엄군과 조직되지 않은 시민군과의 싸움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협상에서 최고한도의 선이라도 얻어낼 수 있다면 무기를 반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수습대책위원회의 시도는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참고 자료
광주광역시 5ㆍ18사료편찬위원회,《5ㆍ18광주민중항쟁》, 도서출판 고령, 1997.
정해구외,《광주민중항쟁연구》, 사계절출판사, 1990.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한국현대사 3》, 풀빛, 1991.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한국현대사 4》, 풀빛, 1991.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광주5월민중항쟁》, 풀빛,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