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
- 최초 등록일
- 2007.08.03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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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도정치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왕조사회임에도 왕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왕의 외척들이 마음대로 권력을 주무르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른 정치’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세도정치로 인해 정치기강이 해이해지고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토탄에 빠지게 한 악덕 정치문화로 현재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비판의 대상으로 묘사되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종래의 세도정치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지나치게 단순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데 별다른 의심 없이 당연시되고 있다. 세도정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수많은 연구결과에 대한‘왜’라는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왜 (1800~1863)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년간의 시기를 세도정치로 부르게 되었는가?’
‘왜 조선 멸망의 근본적인 책임론으로 세도정치의 폐해가 지적되는가?’
‘왜 세도정치가 비난을 받는가?’
‘왜 세도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없는가?’
이처럼 세도정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세도정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한다. 과연 세도정치를 어떠한 이유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논의가 요청되고 있다.
목차
서론
본론
‘왜 (1800~1863)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년간의 시기를 세도정치로 부르게 되었는가?’
‘왜 조선 멸망의 근본적인 책임론으로 세도정치의 폐해가 지적되는가?’
‘왜 세도정치가 비난을 받는가?’
‘왜 세도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없는가?’
결론
본문내용
본론
‘왜 (1800~1863)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년간의 시기를 세도정치로 부르게 되었는가?’
세도정치는 1800년 순조가 즉위한 뒤부터 1863년 고종이 즉위할 때까지 조선왕조의 정치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도(勢塗)는 본래 세도(世道)가 지녔던 의미와는 다른 형태이다. 세도의 뜻을 처음 제시 한 것은 1886년 간행된 『근세조선정감』에서이다. 『근세조선정감』을 지은 박제형은 세도를 “그 사람이 비록 관직이 낮거나 관직은 없이 품계만 갖고 있더라도 왕이 세도의 책임자로 정하면 영의정 이하 모든 관원이 그의 명령을 듣고, 모든 국가의 중요한 일과 관료의 보고를 세도에게 알린 다음에 왕에게 보고하고, 왕은 먼저 세도에게 물어본 다음에 결정하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즉, 세도(世道)는 본래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를 지닌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16세기 이래 조광조, 정인홍, 송시열등의 사림들이 표방했던 통치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조 초기에 세도의 책임을 부여받은 홍국영이 조정의 대권을 위임받아 독재를 하기 시작한 데서 세도(世道)에서 세도(勢塗)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세도(勢塗)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나 외척들이 독단으로 정권을 휘두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조선사의 어느 시기를 우리가 세도라 부르는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도정치가 왜 오늘날에 부패한 정치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순조에서 철종으로 이어지는 60여년간 안동 김씨 일가가 지녔던 권력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데에 있다.
참고 자료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우리역사를 의심한다」- 강만길 외
「테마로 읽는 우리역사」- 이영화 - 동방미디어
「안동김씨의 집권과 그 구조적 특성」- 단국대대학원 홍정원(2003)
「세도정치의 형성과 정치운영」- 한국사연구회 김용흠(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