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민란
- 최초 등록일
- 2007.08.25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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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는 소수의 `영웅`에 의해 발전해간다고 한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기억하는 장군이나 왕과 같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의 주체, 즉 우리 역사를 지탱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이름 없는 `민중`이 아니었을까하고 여겨보면 역사의 한복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누려왔던 민중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서도 그들이 역사 속에서 역사의 주체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민중운동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조선시대의 민중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었지만, 크게는 농민항쟁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민란`과, 정치투쟁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변란`의 두 유형으로 나누어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는 농민항쟁으로서의 ‘민란’ 중에서도 ‘홍경래의 난’을 중심으로 알아보려 한다.
목차
서론
본론 Ⅰ. 민중운동 사상의 특성
Ⅱ. 홍경래 난 항쟁의 배경
1. 사회․경제적 특성
2.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Ⅲ. 항쟁의 전개
1. 홍경래 난 발발
2. 홍경래 난 전개과정
1) 봉기준비
2) 봉기
3) 진압군의 정비와 송림전투
4) 정주성 농성
Ⅳ. 항쟁의 결과
1. 홍경래 난 전후
2.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홍경래 난은 서북지방의 민중항쟁이다. 홍경래 난이 일어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먼저 서북지방의 사회사정에 대해서 알아보자.
서북지방은 중앙정부의 정치적 차별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어려웠기 때문에 사족층은 형성될 수 없었고 설사 사족이 있다 하더라도 지배세력을 형성할 만한 양적 수준을 이룰 수는 없었다. 사족이 없었던 서북지방에서 향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고의 지배계층은 향인층이었다. 향권이란 궁극적으로 경제적 지배를 의미하고 향권의 행사는 부세운영권의 장약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의 부세운용을 주도하던 계층은 향인층이었다. 따라서 향인층이 이 지역 최고의 지배계층인 셈이다. 그러면 향인층이 지배하는 서북지방 향권의 성격을 부세운영을 통해 알아보자.
서북지방은 세는 거두지만 그 양이 적을 뿐 아니라 그것이 중앙정부로까지 올라오지 않고 자체 처리되고 있었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사대부가 살지 않기 때문에 사대부가 사적으로 운송하는 것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사족의 향권에 대한 간섭은 본래부터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의 부세운영권 즉 향권은 향임층이 잡고 있었으며 향임층은 이서층과는 부세운영에서 상하의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서북지방의 경제적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서북지방은 농업 자체로서의 이익보다는 상업적 작물과 기타 상업적 물품이 오히려 경제적 부의 축적 기반이 되고 있었다. 수공업 생산 역시 18세기를 전후하여 서북지방에서 현저히 발전하였다. 영변․성천 등은 견직업의 주요 산지였다. 안주는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견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야장업도 발전하고 있었다. 19세기 초를 전후한 시기부터는 정주와 박천군 용계면 일대를 중심으로 유기점의 수준을 넘어서는 유기 공장수공업이 발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광산경영에서도 새로운 요소가 발생하였다. 특히 서북지방에서는 대청 은자무역과 관련하여 금은광산의 채굴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업의 발전과 상품생산의 발전은 상업적 성장을 더욱 추동하였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세력들이 신향층의 모집단을 형성하여 나갔다고 보여진다.
참고 자료
한국사36, 국사편찬위원회, 1998
민란의 시대, 고성훈, 가람기획, 2000
홍경래의 난에서 이필제의 난까지, 고승제, 도서출판 풀빛,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