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1. 머리말
왕건의 고려 건국으로 동요와 분열의 시기였던 이른바 후삼국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왕건은 어떻게 해서 통일의 과업을 이룰 수가 있었을까. 왕건은 궁예나 견훤처럼 그 자신이 나라를 세우지는 못하였고 궁예로부터 나라를 물려받았을 뿐이었다. 또한 사회적인 동요를 인식하고 분열을 지양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는 궁예나 견훤이나 왕건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왕건이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왕건이어야 했을까가 궁금하다. 이와 관련하여 왕건이 추구한 정책을 알아보는 일이나 그의 출신에 유의해 보는 일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한 이유로 본고에서는 그의 출신에 유의하여 왕건에 의한 후삼국 통일이 가능했던 이유와 그가 취했던 다양한 정책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나말여초의 시대상황을 간략히 알아보고 왕건에 의한 고려의 건국을 중점적으로 살펴 고려의 성립에 대해 다루어 보겠다. 또한 고려사를 시작함에 있어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고려의 성립 이후 고려전기의 정치동향도 흐름상 개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의 성립
3. 태조 왕건
1) 왕건의 통일
2) 왕건의 정책
4. 고려전기의 정치동향
1) 중앙집권체제의 확립과정
2) 정치세력의 변화
5. 맺음말
본문내용
2. 고려의 성립
고려의 건국의 전 후로 한반도 안에서의 세력싸움은 매우 치열 했다. 진성여왕 6년 (892)에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하였고 이것은 후삼국 시대의 시작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 이전에 앞서 발발한 김헌창의 난 김헌창의 난은 헌덕왕 14년 (822년)에 일어났다 그때 김헌창은 웅천부 도독이었는데 원래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은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지만 헌덕왕에게 빼앗겼다 때문에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원한을 품고반란을 일으켜 독자적인 나라를 설립했다. 인정되지는 않지만 국호는 장안으로 하였다고 한다.
은 신라 사회의 분열의 조짐을 보였으며, 이를 전후로 하여, 중앙정부에 반대하는 지방 세력가들 혹은 농민들의 모습이 차츰 보이기 시작하였다. 또한 신라 하대에 도적들의 수가 현저히 증가하였다. 출발은 한갓 도적떼에 지나지 않았지만 후에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를 체계적으로 합리화·정당화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성격을 띠어갔고 그들은 반정부적·반신라(反新羅)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일어난 지방민들의 반란은 완전한 것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호족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을 뿐 단일한 나라를 이루지 못하였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는 전국 각처에 있는 호족들을 규합하여 그 지배 아래 있는 일반 농민들을 모아 하나의 나라를 이룩하고, 신라를 여기에 합해야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나타난 궁예와 견훤은 9세기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호족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성장을 하였다.
훗날 후삼국을 통일하는 왕건은 895년(진성여왕 9) 아버지를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898년(효공왕 2) 정기대감(精騎大監)이 되고, 900년 광주·충주 등을 공취, 그 공으로 아찬(阿粲)의 위계를 받았다. 903년에는 수군을 이끌고 전라도 지방을 공략, 궁예의 영토를 확장하여 알찬(閼粲)에 승진되고 계속하여 전라도·경상도 지방에서 견훤의 군사를 격파하는 한편 정벌한 지방의 구휼에도 힘써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며, 913년 시중(侍中)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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