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 최초 등록일
- 2007.09.19
- 최종 저작일
- 2007.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문화대혁명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문화대혁명의 배경
Ⅲ. 문화대혁명의 전개과정
Ⅵ. 문화대혁명의 결과
Ⅴ. 문화대혁명의 평가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文化革命’은 중국 근대 인텔리겐치아의 사상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관념의 하나였다. 모택동이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막을 올리기 반세기도 전에, 『新靑年』잡지에 참가한 서양 지향적인 중국지식인들은 전 국민의 문화와 심리상태의 근본적인 변용을 위한 ‘문화혁명’으로서 소위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이 용어는 현대중국인의 사상과 정치에서 아직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 두 가지 관념, 첫째 중국의 전통 문화유산을 완전히 배척할 것과 둘째 역사를 형성하는 데 있어 인간의식의 역할의 중요성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관념은 모택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문화적 反전통주의와 인간의 의식적 활동을 결정적 힘으로 간주하는 신념은 모택동의 문화혁명관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모택동은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모습을 180도 바꾸어 놓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을 일으키게 된다. 문혁의 기간을 두고는 학설의 논란이 있는바, 1966년부터 1969년까지의 3년으로 보는 견해와 1966년부터 1976년까지의 10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자의 경우 9전 대회에서 문혁의 종결을 선언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이는 그 이후에도 문혁파의 잔존세력이 여전히 존재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후자의 견해를 택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문혁파의 잔존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거론하는 4인방을 문혁의 주된 세력으로 볼 때 이들이 몰락하는 1976년 10월까지를 문혁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본 보고서에서는 1966년부터 10년 동안의 모택동의 혁명이념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정치적 사건과 정치·경제·문화·사상운동 등 이 시기에 발생한 사회의 총체적 현상에 대해 그 배경과 전개과정 및 결과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중국의 역사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넘어 중국 사회 전반과 중국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Ⅱ. 文化大革命의 배경
문혁이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우선 계급투쟁을 위해 문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사회주의 혁명이 완수되려면 경제구조는 물론이고 그에 상응하는 사상이 개조되어 모든 분야에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며 新民主主義 革命은 1949년에 끝났지만 혁명은 계속되어야 하고, 수정적인 노선을 찾는 반동세력과는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당시 당내 수정주의자들에 대하여 1963년부터 인민공사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주의 교육운동, 즉 四靑운동(정치·경제·조직·사상을 깨끗이 함)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당의 관료주의와 수정주의를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혁명적 지식인의 투쟁대상으로 하였다. 四靑운동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를 위한 강력한 정치투쟁으로 연결되었는데, 이는 첫째 당내 부르주아적 영향력을 배제시킴으로써 실권파의 제거와 둘째 노동자, 대중, 농민, 당 간부, 지식인 사이에 있는 주요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대중노선이라는 문혁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다. 둘째,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와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에 있었다는 견해이다. 대장정을 통해 확립된 모택동 노선은 전 인민에게 중국 공산당의 영도자로서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그 어느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다. 따라서 모택동 개인의 잘못된 판단이나 오류를 견제하거나 교정하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참고 자료
마크 블레처(전병곤외 역), 반조류의 중국, 초판; 서울: 도서출판 돌베개, 2002
모리스 마이스너(김수영 역),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2, 초판; 서울: 도서출판 이산, 2004
오쿠무라 사토시(박선영 역), 새롭게 쓴 중국 현대사, 초판; 서울: 조합공동체 소나무,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