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7.09.21
- 최종 저작일
- 2007.06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중록에 대한 연구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줄거리
Ⅱ. 등장인물
1. 영조
2. 홍봉한
3. 혜경궁 홍씨
Ⅲ. <한중록>과 <영조실록> 내용 비교연구
1. 처형
2. 친정으로 가게 된 혜경궁 홍씨
3. 사도세자 인산
4. 세손을 경희궁으로 보냄
5. 가효당(嘉孝堂)을 하사 받음
6. 선희궁 승하
Ⅳ. 문학적 탐색
1. <한중록>의 장르성향
2. 혜경궁 홍씨의 글쓰기
① 침묵과 눈물의 언어
② 망설임과 고백의 언어 &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글쓰기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줄거리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 혜경궁 홍씨는 영조에게 죄인(사도세자)의 처자가 대궐에 있기 황송하여 친정으로 돌아가겠다고 상서하자 영조는 폐위 서인하여 대궐에 있지 못할 것이니 친정으로 돌아가라 전한다. 가마에 올라 기절한 채 겨우 친정으로 돌아온 혜경궁 홍씨는 슬퍼하며 자결을 하려고 하지만 11세의 세손(정조)에게 더한 고통을 남겨줄 수 없어 모진 목숨을 붙들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 대변(大變)을 겪은 세손을 위로한다. 중부와 두 외삼촌이 세손을 주야로 모셔 보호했으며 홍낙윤(洪樂倫)이 아이 때부터 세손을 모시고 놀았던지라 그가 작은 사랑에 세손을 모셔 8~9일을 지내자 김 판서 시묵과 그 자제 김기대(金基大)도 와서 세손을 뵈었다. 친정집이 좁은데 세손궁 상하 나인이 전부 나와 있기 때문에 남쪽 담 밖의 교리(校理) 이경옥(李敬玉)의 집을 빌어서 김 판서 댁이 그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빈궁을 모시고 있게 하며 가까이 왕래하였다.
그 즈음 파직되었던 홍봉한을 영조께서 다시 등용하여 정승이 된다. 그 이튿날 부친이 상교를 받고 영조의 뜻을 전하니, 혜경궁 홍씨가 보전하여 세손을 구호하라는 하교에 세손을 위하여 감읍함이 측량없어 세손을 어루만져 축수한다.
20일 신시(申時)쯤 폭우가 내리고 천둥소리가 들리니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천둥소리를 무서워하던 것을 생각하며 몹시 걱정하며 그 20일 밤에 비오던 때가 사도세자가 숨지던 때인가 싶은 마음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대하던 것이 생각나 더욱 원통해한다. 한 번은 사도세자가 의대병환(衣帶病患)으로 무수히 여러 가지를 갈아입다가, 어찌하여 생무명 한 벌을 입었는데 영조가 사도세자의 병환은 모르고 어찌하여 생무명 거상옷을 입었느냐며 지금까지 쓰던 세간을 모두 가져오라 하였는데 환도와 보검을 상장같이 만들고 그 속에 칼을 넣어서 뚜껑을 맞추어 상장같이 한 것을 보고 크게 노한다.
참고 자료
정은임 교주. 『한중록』. 이회문화사. 2002.
김성수.「<한중록>연구: 장르성향과 서술미학을 중심으로」. 영남대 대학원. 석사. 200
김현주.「한중록의 의미구조와 글쓰기 양상, 패미니즘 비평을 중심으로」.상지대 대학원. 박사. 2006.
전지현.「한중록에 나타난 혜경궁 홍씨의 삶의 지향」. 한남대 교육대학원. 석사. 2002.
정권균.「한중록의 집필 의도와 교수학습에 대한 연구」. 부경대 교육대학원. 석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