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독수 -5.4 신문화운동의 기수, 중공 창당의 주역
- 최초 등록일
- 2007.09.25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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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아시아 현대사 시간에 작성한 진독수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진독수의 생애
Ⅱ. 진독수의 사상
1. 반전체주의와 좌익자유주의
2. 대중민주주의론
Ⅲ.근대화에 미친 영향
* 5.4 신문화운동
* 진독수가 펴낸 <신청년>과 그 전신인 <청년잡지>
본문내용
Ⅰ. 진독수의 생애
진독수는 중국공산당의 창설자이며 혁명가로써 5.4 신문화운동 시기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이 서구 문명을 받아드려 혁명할 것을 주장하였고 5.4운동이후에는 마르크시즘을 통하여 중국을 개혁하려는 시도를 했던 사상가이자 개혁가이다. 여기서는 그의 전반적인 생애와 그의 사상(전반적 반전통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장개석정부는 진독수(1879.10.8~1942.5.27)를 ‘위해민국’ 혐의로 기소하여 1932년 투옥하였다가 1937년에 석방하였다. 그 뒤, 1937년 8월부터 1942년 5월 사망하기까지 약 5년 동안은 진독수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마지막으로 정리한 시기였다. 그가 석방되고 사망하기 바로 직전까지 이 5년 동안(1937~1942) 발표했던 논문과 친구와 교환했던 서신내용 등의 일부가 뒤에 ‘진독수 최후논문화서신’이라는 소책자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그는 거기서 “소련 20년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6~7년 동안을 심사숙고한 끝에 마침내 민주정치에 대한 나의 ‘최후 견해’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 동안 진독수의 정치사상은 소련경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연구와 깊은 사색을 반영하고 있다.
이 기간은 파시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거의 망해가고 있었으며, 국공관계는 날이 갈수록 긴장을 더해 가고 있었다. 이 시기 진독수는 고독하게 생활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길을 더욱더 멀리 이탈해 가는 가운데, 그의 옛 친구인 호적이 지적했듯이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민주주의로 다시 되돌리고 있었다. 석방 후 진독수는 **트로츠키주의 운동에 다시 참가하지는 않았다. 다만, 항일민족통일전선이라는 중국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생애의 마지막 5년 동안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보편성 문제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최후견해’를 정리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