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로회 한국 선교의 선교정책
- 최초 등록일
- 2007.10.08
- 최종 저작일
- 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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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 장로회 선교부가 한국에 선교할 당시에 펼쳤던 선교정책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1 선교회간의 연합활동과 선교지 분할정책
2 네비어스 선교원칙
3 의료와 교육을 통한 간접선교정책
1)의료선교 정책
2)교육선교 정책
4 문서전파와 거점교회 설립을 통한 직접선교정책
1) 문서전파 방법
2) 지역거점교회의 설립
본문내용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는 다양한 신학과 교리적 배경을 가진 교파형 교회였다. 이러므로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본국 교회 선교본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으면서 피선교지에서는 상호 협력과 연합을 통해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유에 의해 파생된 것이 선교사 연합 공의회와 선교지 분할 협정이다. 장로교의 연합은 1889년 호주의 빅토리아교회 선교사 데이비스(J.H. Davies)와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 사이에 맺은 연합선교공의회(The United Council of Presbyterian Missions)가 시발점이 되었으나 데이비스가 선교도중 사망하자 이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1893년 1월에 선교사 연합 공의회가 재조직되었다. 이 연합공의회는 “조선에 갱정교(개신교) 신경과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연합교회를 설립하는 것” 곽안전 편, 장로교회사전휘집, 1918, 조선야소교서회, 14-15쪽; 한국기독교사연구회, 앞의 책, 208쪽에서 재인용
을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후 캐나다 장로회와 호주 장로회도 가입하였다. 이 기구는 초기엔 단순히 협조와 논의를 위한 협의체적 성격을 가졌으나 1901년 한국인들이 이 공의회에 참석하면서부터 1907년 장로회 독노회가 설립되기까지는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까지 갖게되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1905년 9월 미국 감리교 2개선교부와 협의하여 한국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로 확대 개편된다. 이후로 이 공의회는 하나의 교회인 `대한예수교회`를 세울려는 계획까지 가졌으나 한국인들의 합의와 열망과 교리적 차이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선교사들의 입장차이에 의하여 완전한 한국 단일교회로는 발전하지 못했고 교파형 교회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협의사항만을 논의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공의회적 차원의 연합사업은 정기간행물사업, 찬송가 발행사업, 교육과 의료선교사업, YMCA사업 등에 협조와 연합을 통해 효과적인 선교사업을 전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