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우리의 역사 왜곡
- 최초 등록일
- 2007.10.10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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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주의에 따른 역사 왜곡
목차
없음
본문내용
국사서술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국사 서술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은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사서술에 있어 유일한 원칙은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사건에 대해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더라도, 국가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국사를 기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장과 생략을 절제하지 않음으로써 전체 역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저해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있었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한 신채호의 해석을 보도록 하자.
서경전역(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역대의 사가들이 다만 왕의 군대와 반란의 무리를 친 전역(전쟁)으로 알았을 뿐 이었으나 이는 근시안적 관찰이다. 그 실상은 전역(전쟁)이 곧 낭불양가 대 유가(儒家)의 싸움이며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漢學派)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이었던 것이다.
사학자들은 일본의 이러한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역사 연구에 주력하였다. 한국 사학자들의 그러한 노력은 한국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일조 하였지만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자율적인 노력에 의해 스스로 발전하였다는 그들의 강한 믿음은 사학자로서 지녀야할 객관적인 태도를 잃게 하였고, 그런 태도는 국사 교육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일본 사학자들의 견해와는 반대 주장을 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인 양 여겨지기도 하였다. 결국, 한국 역사는 타국에 의해 그 연구의 흐름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시대 후기에 상업자본에 관한 논쟁이 있다.
참고 자료
이성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김한규, 「역사 교과서의 민족주의적 왜곡」
신채호, 「조선 역사상 1천년래 제1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