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신화에 드러난 여성의 지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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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신화에 드러난 여성의 지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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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전래동화에서 나올 법한 수염이 하얗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백발의 신? 혹은 그리스도교의 예수? 아니면 불교의 석가모니? 이처럼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신의 이미지는 다양한 듯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이다. ’여성신’을 떠올린다는 것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우리에게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신화 속에 나타나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혹시 판도라나 메두사를 떠올리지 않았는가? 잘 알려져 있듯이, 최초의 여자 인간의 원형인 판도라는 제우스가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으며,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뱀이고 눈만 마주쳐도 돌이 되어 버린다는 극악한 괴물이다. 이처럼 신화 속의 여성들은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며, 심지어 여신—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神)의 이미지로서의 여신은 떠올리는 것 조차도 힘들다. 그렇다면 이미 죽어버린—그것도 이미 그 옛날에 죽어버린 여신과 모두가 알고 있는 신화 속 부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새삼스레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의 이유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민족의 고대 신화 속에서 그려지는 태초의 신은 ‘능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여신’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당시의 ‘살아있는 숨쉬는 여신’의 이미지와 그것의 변질 과정에서 나타난 신화 속 여성성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각각의 신화 속에 내재 되어있는 여성성과 나아가 점차적으로 부권사회로 이향되는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메소포타미아 신화 중 심각한 변화를 겪는 바빌론의 창조신화를 살펴보자. 바빌론의 창세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 Enuma Elish』는 총 일곱 개의 토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 1토판에는 태초의 우주 질서 확립과정과 구신(舊神)과 신신(新神)의 대결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시끄러운 젊은 신들이 못마땅했던 압수(Apsu)와 뭄무(Mummu)는 젊은 신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압수는 티아맛(Tiamat)에게 이러한 자신의 계획을 알린다. 티아맛은 이에 반발하지만 압수는 티아맛의 반발을 묵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압수가 그녀의 말에 복종했느냐의 여부가 아닌 음모를 실행하기 전에 그녀에게 자신의 계획과 결정을 티아맛에게 알리고 허락을 구하려 한 사실 그 자체이다. 이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때까지만 해도 모성신이 부성신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 정재서, 전수용, 송기정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 장영란, 「사라진 여신들의 역사―위대한 어머니 여신」 (서울, 살림 2003)
 임경환, 「동아시아 여성 신화」(서울, 집문당 2003)
 베아트리체 마시니, 이현경 옮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성들」(서울, 현대문학 2003)